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시간에 다룰 주제는 고지도입니다.
우리 인류가 동물과 다른 점 중에 하나는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류 문명의 등장을 언급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바로 문자입니다. 문자를 통해 정보를 기록하면, 시간과 공간을 극복해서 지식이 축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자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도시입니다. 인류 문명은 집합적인 주거를 통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현대문명 또한 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에겐 도시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류 최대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문명의 핵심은 도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현재 인류의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시는 참 흥미로운 대상입니다.
우리 수업이 공간정보와 공간분석인데, 공간정보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지도입니다. 공간정보를 글로 표현하려면 길어지기도 하는데다가, 잘 와닿지도 않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길을 안내해야 된다고 생각해봅시다. 전화나 문자로 어떻게 이동해야하는지를 설명하려면 구구절절 길어질 뿐만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이 듭니다. 그냥 메신저로 지도를 보내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자가 없는 무문자사회에서도 지도가 있기도 합니다. 마샬 군도의 스틱 차트가 대표적입니다.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것처럼 생긴 이 스틱차트가 바로 거대한 태평양의 거칠고 험난한 바다를 카누로 항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지도입니다. 섬의 위치와 해류의 방향 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도야말로 인간 삶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를 따라가보면 인류 문명을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지도를 읽으면 지도가 만들어진 지역에서 그 당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세계관과 공간정보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지도를 따라가면서 우리 인류의 공간정보와 공간인식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바빌로니아 점토판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세계지도입니다. 현재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만들어진 지도입니다. 위쪽에는 쐐기문자가 표기되어 있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 널리 사용되던 문자입니다. 아래쪽에 있는 동심원과 삼각형 모양의 도형이 지도입니다. 안쪽 원이 대륙이고, 그 대륙을 도넛처럼 바다가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표현하였습니다. 대륙에는 바빌로니아 왕국과 다른 나라들, 유프라테스강 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다 바깥쪽에 삼각형 형태가 여러 개 있는데,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상상의 대륙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지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철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습니다. 이미 지구가 구체인 것을 알고,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계산해본 적도 있으니까요. 그러한 공간인식을 계승한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파악된 지리정보를 모두 모아 세계지도를 작성했습니다. 지구가 구체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표현하기 위해 위선과 경선을 이용한 점이 드러납니다. 당시 상황에서 비교적 잘 알고 있던 지중해와 그 주변지역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좀 자세하지만, 지도에서 외곽으로 가면 지리정보가 상당히 부정확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 아일랜드, 이베리아반도, 이탈리아반도, 흑해 등 유럽과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등은 상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남부가 쭉 연결되어서 동쪽에 있는 아시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양은 대륙으로 둘러싸인 내해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도까지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남부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일대는 형태의 왜곡이 큽니다. 지도 외곽에서는 각 방향에 해당하는 신들이 바람을 후 불어주고 있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당시 최고 수준의 지리정보를 담고 있는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에 이런 위대한 지도가 있었지만 중세에는 계승되지 않았다가, 르네상스 시기 이후 다시 제작된 지도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유럽의 중세를 장악한 지도는 티오지도입니다. 알파벳 T와 O를 닮았다고 해서 티오지도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인 지도도는 북쪽이 위로 가게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동쪽이 위로 가게 되어있는 지도입니다. 이러한 지도를 이해하려면,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크리스트교의 세계관을 이해해야합니다. 예수님이 활동한 예루살렘은 성지이기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의 중앙에 배치하구요. 인간의 시작이자 이상향에 해당하는 에덴동산은 동쪽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중해가 세로로 길쭉하게 배치되면서 알파벳 T와 유사한 형태가 되고, 전반적인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의 대륙 형태는 원 안에 넣어서 알파벳 O와 유사한 형태가 됩니다. 티오지도에 해당하는 지도는 엄청나게 많지만, 핵심은 크리스트교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지도라는 점입니다.
비슷한 시기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를 계승하여 인류의 공간정보를 집대성한 지도를 제작합니다. 그 대표작이 바로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서 정확하게 표현되었던 지리정보들은 물론이고, 이슬람 상인들이 세계를 누비며 습득한 지리정보는 추가되어 완성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나타낸 지도와, 각 지역에 대해 세부적으로 나타낸 지도 등 여러 장의 지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동쪽 세부 지도에는 알 실라가 있어 신라가 국제적인 교역망의 일부로 유라시아 실크로드의 종착지에 해당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세계 지도에서 특이한 점은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지도의 중앙에 메카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가 위치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지도의 위쪽이 남쪽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인도양이 외해로 열려있는 큰 바다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은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서 특히 발전한 부분이지만, 아프리카 남쪽의 모습은 여전히 꽤나 부정확한 모습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여러 문명은 빛나는 지도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문화권도 독특한 지도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고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천원지방 사상과 중화사상이 있습니다. 천원지방 사상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낳게 생겼다는 세계관입니다. 중화사상은 세상의 중심은 한족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족의 문화는 중심이고 중앙인 중화에 해당하고, 외곽에 있는 오랑캐 문화와 구분합니다. 화와 이를 구분하고, 자신들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다분히 자문화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지도가 몇 가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지도의 중앙에는 중국이 아주 크고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고, 한반도는 구석에서 대충 적당히 작성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나라 또한 세계에서 주목하는 훌륭한 지도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지도가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혼일강리도는 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긴 한데,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와 알 이드리시 지도가 그렇듯 당대에 그 사람들이 제작한 원본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고 필사한 버전이 남아있습니다. 다만 원통한 부분은 모두 일본에 남아있다는 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일본 류코쿠대학교 소장본을 정밀하게 다시 베껴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긴 합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402년 조선의 김사형, 이무, 이회 등이 제작한 세계지도입니다. 물론 조선인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녀서 만든 지도는 아니고, 당시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지리정보를 모아서 만든 편찬도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세계지도로 평가받습니다. 지도 전체에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이 온전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알지 못했던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조선입니다. 지도의 오른쪽에 아주 크고 당당하게 한반도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중국이 있다고 중화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그렇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중국이 한반도보다 50배 큰데, 우리 선조들이라고 그런 지리정보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이 크다는 점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한반도와 고작 몇 배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게 그렸습니다. 서쪽에 아프리카 대륙보다 조선을 더 크게 그린 점을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조선이 이렇게 크게 그려진 점을 보면 당시 개국한지 얼마 되지 않는 조선의 모습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조선 개국한 당시 그려진 한반도 지도가 지금까지 남아있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한반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 지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이 가능합니다. 참고해서 그린 원본 한반도 지도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 우리 선조들은 한반도의 지리정보에 대해 꽤나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본도 꽤나 살펴볼 것이 많습니다. 일단 한반도 밑에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진 섬이 하나 있는데, 그게 대마도입니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눈으로도 보이는 곳인데, 조선 초기 선조들이 대마도가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이라는 점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책으로 펴내려면 여백이 많은 것보다는 지리정보가 많은 것이 좋다보니, 실제 땅 모양과 다르게 휘어서 네모난 종이에 꽉꽉 차게 표현했습니다. 그 지도를 참고해서 그리다보니 한반도 가까운 곳에 휘어져 있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일본 전체적인 윤곽은 조선인이 모두 답사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서 지도를 제작한 행기 스님의 지도 형태가 유행했는데, 그 지도를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일본은 크게 네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배웠는데, 이 시기까지는 혼슈의 도호쿠 지방과 홋카이도 및 사할린 일대에는 아이누족이 살고 있어서 일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큰 섬은 세 개로 표현되어 있고, 혼슈 동북부는 뾰족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가까운 나라다보니 일본에 대한 지리정보는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일본열도가 한반도보다 작지 않다는 점은 선조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텐데, 일부러 작게 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열도가 한반도의 동쪽과 남쪽에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을텐데, 지도를 비단에 그려야하다보니 일본을 실제 위치에 맞게 그리면 엄청나게 많은 바다를 표현해야 하는 낭비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밑으로 옮겼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류코쿠대학 소장본에서는 대체 왜 90도 회전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것인지는 세계의 학자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중국입니다. 당연히 내용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도의 이름에 역대국도가 들어간 것을 보면 알겠지만, 역대 수도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면서 원나라의 성교광피도를 참고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본 지도가 중국에 대한 지리정보를 풍성하게 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동남아시아를 비교하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동남아시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차이나반도, 말라카해협 등의 주요 지형 형태와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동남아시아가 동북아시아에서 사실 엄청나게 멀지 않은데 유난히도 지리정보가 많이 부정확합니다. 아무래도 참고했던 원나라가 몽골인의 국가이다보니 해양세력의 지리정보 취득에는 부실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의 베트남이나 말라카에 해당하는 지명은 등장하는데, 특이한 것은 남쪽 섬에 남인도에 해당하는 지명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불교가 전래될 때도 그렇지만 북인도는 육로로 중국과 소통하였지만, 남인도는 바닷길을 따라 소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북인도와 남인도가 모두 인도아대륙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북인도는 유라시아대륙의 일부로 표현하고 남인도는 섬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 일대는 형태가 비교적 정확하지만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대체 지중해는 왜 육지로 채색되어 있는 것인지, 사하라 사막은 대체 왜 바다로 채색되어 있는 것인지 학자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실제 카스피해는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인데, 왜 지도에서는 동서로 길쭉한 형태인지도 궁금합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형태가 비교적 정확한 것도 의문입니다. 기존까지는 유럽에서 항해를 통해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하면서 아프리카 대륙 남쪽에는 바다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훨씬 전에 아마도 이슬람 상인들이 무역을 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대략적인 형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는 점은 아프리카가 유럽의 식민지배 이전까지 미개하고 원시적인 사회가 아니고, 인도양 무역의 일부로 활동하던 문명사회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동아시아에 있는 조선의 지도가 포스트 식민주의 시대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셈입니다.
고지도를 읽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고지도를 읽는 재미가 느껴진다면, 그 재미가 바로 인류를 읽는 재미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지도를 읽을 때 팁이 있다면, 우리가 심상지도를 그릴 때 나타나는 특성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보통 잘 알고 강조하고 싶은 것을 가운데에 크고 자세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도의 중심이 어디인지, 지도의 방향은 어디인지, 지도에서 드러나는 대륙의 형태는 어떠한지 실제 지구와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쉽게 구분이 가능합니다. 특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그 중에서도 유난히 주목을 많이 받는 지도입니다. 학자들도 연구를 많이 하겠지만,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살펴볼만한 점이 많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3학년부 교무실 벽에 크게 게시했고, 클래스룸에도 파일을 업로드했습니다. 궁금할 때마다 한번 슥 보면서 우리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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