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정보에 들어가기 앞서 공간을 먼저 다루려고 합니다. 공간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그 뒤에 공간정보도 이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잘 배우는 학생들은 핵심 개념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하게 용어를 이해하고 시작하면, 그 뒤에는 내용이 차곡차곡 쌓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공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공간과 장소와 세계는 지리를 배우면 반드시 자주 접할 수 밖에 없는 개념입니다. 지리를 배울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 것은 다섯 가지로 꼽습니다. 지리인식, 장소와 지역, 자연환경과 인간생활, 인문환경과 인간생활, 지속가능한 세계 등입니다. 그래서 세부적으로 위치, 공간분석, 지리사상, 장소, 지역, 관계, 지형, 기후, 인구, 도시, 경제, 문화, 불균형, 환경, 공존 등의 개념을 다루게 됩니다.
그 중에서 자주 헷갈리는 개념이 바로 공간과 장소입니다. 공간과 장소는 사실 비슷한 부분도 많은데, 지리에서는 그 의미를 구분합니다. 대표적인 학자로 이푸투안이 있습니다. 중국 톈진 태생의 미국 지리학자인 이푸투안은 지리가 인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대표 저서인 공간과 장소를 보면, 토포필리아라는 개념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와 사랑한다는 뜻의 필리아를 합쳐서 만든 단어입니다. 공간과 장소를 구분하여 장소에 쌓인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공간은 space, 장소는 place입니다. 공간은 객관적이고 자유로운 곳을 의미하고, 장소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곳을 의미합니다. 그 말이 그 말 같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공간과 장소를 구분할 수 있게 뒤에 다른 표현을 붙여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원뿔이나 구와 같은 도형을 '공간도형'이라고 할까요 '장소도형'이라고 할까요? 당연히 공간도형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표공간에서 살아가고, 그 공간은 수학적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에는 '약속공간'이라고 할까요 '약속장소'라고 할까요? 당연히 약속장소라고 합니다. 장소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곳입니다. 공간이 의미가 없는 백지같은 곳이라면, 장소는 인간화된 공간인 셈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장소에 감정을 느끼고, 그러한 장소감이 쌓여 장소성이 부여됩니다. 장소성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장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공간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공간적인 사고방식을 합니다. 친구와 사이가 좋다는 것을 '가깝다'라고 표현합니다. 위, 아래, 앞, 뒤, 멀다, 가깝다, 깊다, 얕다, 겹친다 등은 공간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그 의미가 확장되어 일상에서도 흔하게 사용됩니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미 공간에 스며들어서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공간을 인식하는 공간지각능력도 인간의 지능 중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길 찾기, 짐 정리하기 등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불편함을 겪습니다. 반면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 운동선수나 건축가 등에 많이 있는 편입니다.
지구라는 공간은 하나이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공간이라도 다르게 인식합니다. 여러분들이 고양국제고와 고양시와 한반도와 세계를 지도로 표현하면, 똑같은 지도는 하나도 없게 됩니다. 여러분만 다른게 아닙니다. 연령에 따라 공간인식능력이 달라 어린이와 어른의 지도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멕시코의 학생과 말레이시아의 학생은 같은 세계를 다르게 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간을 끄집어 내서 지도로 표현한 것을 심상지도라고 부릅니다. 심상지도는 사람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베네룩스에 해당하는 북서유럽의 해발고도가 낮은 저지 국가들은 Leo Belicus라는 사자로 표현한 형태가 많습니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인류의 세계관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선조들은 대지모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땅을 어머니로 여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마고할미나 설문대할망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대에도 가이아이론 등에 영향을 주며 지구 전체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견해로 계승되었습니다. 특히 환경운동을 하는 경우에 이러한 가이아이론의 비유를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풍수지리의 영향력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풍수지리는 장풍득수를 줄인 말로,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유래되어 한반도에는 신라 후기부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기운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추어 해석하게 되는데, 지형의 기운을 살펴 좋은 터를 잡으려는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국, 지세, 명당 등이 모두 풍수지리의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명당은 산이 둘러싸고 앞쪽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를 중요하게 봅니다. 뒤쪽인 북쪽에 산이 있으면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앞쪽에 하천이 있으면 들판에서 농사를 짓기 좋습니다. 풍수지리는 사고체계이지만, 풍수지리에서 꼽는 명당은 실제 사람이 거주하기에도 유리한 부분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풍수지리는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양택풍수는 집, 마을, 도시 등의 입지에 영향을 주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서울은 조선이 건국되고 수도가 옮겨지면서 지금과 같은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서울의 도시구조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정도전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양도성에 해당하는 곳은 풍수지리상 명당의 조건에 부합하는 부분이 많아 입지하게 되었는데, 한반도의 중심에 해당하고 한강을 통해 조운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국가통치에 대한 관점에서도 합리적인 주장입니다. 거기에 조선의 건국이념인 성리학적 질서도 부여하는데,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아 주례에 따라 좌묘우사나 전조후시와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사대문의 명칭이나 도로의 폭 등도 모두 성리학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의 서울은 풍수지리의 공간인식과 성리학적 질서가 오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택풍수 이외에 음택풍수도 있습니다. 음택풍수는 죽은 사람이 묻힐 묘지의 입지를 보는 방법입니다. 특이한 것은 비보풍수입니다. 실제 자연 지형이 풍수지리의 명당에 이상적으로 완전하게 부합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땅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부족한 기운은 보완하고 넘치는 기운은 눌러서 풍수지리적으로 더 좋은 땅으로 바꾸어 쓰는 방법입니다. 풍수지리를 마치 전근대시기의 비과학적 환경결정론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인간의 활동에 무게를 두는 적극적인 의미도 있는 셈입니다.
구한말부터 국토인식에도 변화가 생겨납니다. 일본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토 분지로는 이미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한반도를 여러 차례 답사하고, 한국의 산맥 체계를 연구했습니다. 조선산악론에서 제시된 지질학적인 지구조운동 중심의 산맥 체계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산은 흐름이고 산줄기는 연결되어있다는 생각과 서로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산악론에서 한반도를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토끼로 묘사한 인식이 잘 알려졌습니다. 한반도를 나약한 토끼에 비유하는 그러한 사고방식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사상들과 함께합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지배하는 국토관은 반도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반도는 대륙도 아니고 해양 도 아니므로, 주체성이 없고 대륙이나 해양의 강한 세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한반도의 운명은 한반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타율적인 성격이 있다는 국토관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일제에 대한 반작용처럼 국토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노력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한반도의 모습을 동북아시아를 향해 꿈틀거리는 호랑이의 모습에 비유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견해는 바로 김교신 선생님입니다. 일제강점기 영생, 양정, 경기 등 고등보통학교의 지리선생님이었던 김교신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반도는 산지나 해안선이나 기후나 인구나 무엇으로 보아도 충분히 감사할 가치가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국토관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고난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으니, 모든 고귀한 사상이 모인 정수는 바로 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습니다. 최근 한국의 문화 상품들이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 식민지배와 전쟁을 딛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이어주는 교량국가로 주목받는 점 등을 생각해보면 다시 곱씹어볼만한 주장입니다. 얼마 전 올림픽이 있었는데, 김교신 선생님은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에서는 산업화가 큰 화두였습니다. 잘먹고 잘살아보겠다는 사람들에게, 국토는 그 무대가 되었습니다. 대규모 간척사업이나 댐, 고속국도, 공업단지 등이 활발하게 건설되었습니다. 국토를 적극적으로 개발한 결과 놀랄만한 경제적인 성과를 이룬 것도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국토불균형 발전이나 환경파괴가 자행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근래에서는 국토를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에서 탈피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발행위가 돌고 돌아 다시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인간과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국토계획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공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관점에 대해 가볍게 살펴보았습니다. 수업 듣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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