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수업에서 답사가 강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온몸으로 느낀 그 감각이 경험으로 남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 현장에서 의욕있게 나섰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학습한 개념들을 현실에서 발견하고 확인하며 이해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론으로 무장하고 경험이 축적된 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어쩔 수 없다.
조선기행록은 전문가의 야외답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다. 고토 분지로의 이름은 익숙하다. 황해도의 광물에 고토석이란 이름이 붙었고, 겐부동굴에서 유래하여 현무암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산맥에도 이름을 붙였다.
방학을 이용한 짧은 답사에 남부지방의 그 많은 암석을 모두 정리한 모습이 경악스럽다. 세부적으로는 틀린 부분이 많다지만, 암석학은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 상관 없다. 경상누층군을 상부와 하부로 구분하여 정리한 것도 놀랍다. 필요한 사진이 잘 찍혀 있고, 첨부된 지질도가 알록달록 예쁘다. 토양, 지형, 기후, 역사, 도시, 산업 등을 함께 다루어 지루하지 않았다.
이 책이 좋은 점은 지난 세기의 일본인 저술의 단순 번역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읽다 궁금했던 점들이 다 해설되어있다. 대체 왜 산맥의 이름에 고개이름이 붙어있는지 궁금했다. 답사길에 고개를 넘으며 산맥을 확인해서 그렇다. 대체 어떻게 층서에 필요한 그 많은 노두를 확인했을지 궁금했다. 악지로 표현될만큼 식생이 빈약했던 시기라 가능했다. 대체 현미경도 없이 어떻게 광물과 암석을 척척 구분한 것인지 궁금했다. 유럽에서 현미경을 이용한 암석학을 배운 것이었다. 대체 여러 지점에서 본 수많은 암석들을 어떻게 연결지어 한반도의 지체구조를 설명했는지 궁금했다. 허무하지만 명확하게도 답사를 하는 사람의 능력이었다.
고토 분지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조랑말을 끌고 한반도를 누비면서도 토착지리학자인 이중환과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을 인용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단 한번도 고등학교에서 빠진 적 없던 한국지리가 다음 교육과정에서 사라질 것 같다. 세상이 변했고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 과목은 사라지는게 맞지만, 씁쓸한 뒷맛은 지우기 힘들다. 그 동안 답사다녔던 곳들이 눈에 밟힌다.
뿌직뿌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