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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자료/고양국제고 수업자료(2021)

세계문제와미래사회_09비판지정학

by Thisis Geoedu 2021. 4. 1.

지난 시간까지 배운 내용들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국가의 지리적 상황에 중심을 두고 흥망성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걸 다 고전지정학이라고 합니다.

고전지정학이 기반이 되어 대량 학살이나 침략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이해가 어려우면 하우스호퍼와 나치를 떠올리면 됩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정학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학문으로 이해가 되면서, 침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정학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대외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지정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정학 이론은 계승되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소련의 경우에 매킨더의 주장은 제국주의자들의 견해일 뿐이라며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유라시아 제국에 주목하며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가 주변국으로 팽창하면서 지정적인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구요. 중국이 급부상하며 중국과 러시아가 결합한 새로운 대륙세력의 등장을 견제해야한다는 지정학적 시각이 다시 관심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협력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근래에 고전지정학적인 견해들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면서 지정학은 부활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는 것처럼 고전지정학의 한계가 노출된 상황에서 새로운 지정학의 흐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서 비롯된 경향을 비판지정학이라고 부릅니다. 기존의 고전지정학은 백인 남성 서구 엘리트 중심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는 상황에서 통제하겠다는 발상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백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남성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강대국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지리는 결정론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지리적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라서, 주어진 제한된 정보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고전지정학은 영토에 중심을 두고 생각하다보니 주변 나라를 침략하고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식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외교정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이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고, 평화도 있어요. 게다가 고전지정학은 근대 국민국가만 지정학의 주체로 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는 시민단체나, 다국적기업이나, 대중매체 등 다양한 부문이 지정학의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비판지정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야도 필요합니다. 고전지정학을 다룬 책이 잘 팔리는 이 기회에 지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런 텍스트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우리 학생들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판지정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고전지정학의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시야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를 살펴보겠습니다. 게르만어 계열인 스웨덴과 슬라브어 계열인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있는 핀란드는 두 언어와 완전 계열이 다른 핀란드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인구도 훨씬 적은 나라인데, 오랜 기간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가, 20세기에 들어서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소불가침조약이 맺어지면서 소련이 가져갈 운명이 되었는데, 겨울전쟁 기간 소련의 침략에 맞서 저항하며 아주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겨울전쟁의 교훈 덕분인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핀란드는 소련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냉전 질서로 재편되는 와중에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을 선언합니다. 게다가 지금의 스탈린그라드로 가는 길목의 영토를 포기하고 소련의 지배를 인정합니다. 영토는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한 뼘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런 영토를 쉽게 포기한다는 점이 납득되질 않는 서독의 정치인들이 핀란드화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약소국은 강대국의 영향으로 국익이 훼손된다는 의미로, 핀란드가 소련의 속국이라는 의미를 담아 비하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근래에 국내 언론에서 핀란드화를 자주 언급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중국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이 맞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핀란드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의 대통령인 파시비키와 케코넨은 냉전시기 핀란드의 중립 평화 외교정책을 이끌었습니다. 소련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안보적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이웃한 국가이므로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는 기초를 세웠습니다. 그런 기초 속에서 나토 미가입이라는 결정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평화적 이웃으로 소련에게 핀란드가 신뢰를 받으면, 그 신뢰를 기반으로 서유럽의 국가들과 협력할 기회도 많아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러한 외교 정책을 대표하는 성과가 바로 헬싱키 프로세스입니다.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에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된 양쪽 진영 정상들이 모여 국제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안보협력에 대해 합의하며 헬싱키 협약을 맺었습니다. 헬싱키 조약 하나로 끝난 것은 아니고,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서유럽과 동유럽으로 나뉜 냉전의 시대에도 협력의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며 냉전이 종식되었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큰 희생 없이 유럽 전체의 평화가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헬싱키 프로세스를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핀란드화라는 개념은 모욕적이기까지 합니다. 핀란드를 소련의 속국으로 취급하지만, 사실 소련에 예속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소속된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라서 소련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핀란드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도 아니고 소련에게 내정간섭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핀란드는 민주주의 국가로 선거를 실시했는데, 국민의 뜻에 따라 소련과의 평화 공존을 추진했을 뿐입니다. 소련 입장에서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는 이웃나라였고, 신뢰가 있었기에 서유럽이나 미국과 교류할 때 창구로 활용하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핀란드야말로 고전지정학의 시각과 비판지정학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지정학의 시선으로는 핀란드는 군사적으로 침략을 받아야 하는 지정적 위치를 가지고 있고, 강대국 눈치만 보는 수동적인 나라이며 강대국의 관리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비판지정학적인 시각으로는 지리적 결정론을 극복하고 강대국 사이의 교량 역할을 수행하며 평화와 소통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적극적인 주체가 됩니다.

잠깐 옆으로 가겠습니다. 이처럼 고전지정학에서 비판지정학으로 지정학의 흐름이 변화하는 현대에, 오히려 지정학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정학은 군사력과 지배 등 통치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냉전 이후 전 세계가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재편된 세상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공간을 살펴보는 지경학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정치지리학과 지정학이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경제지리학과 지경학도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게 오늘 수업의 핵심은 아니구요. 어쨋든 국가적으로 통상에서 얻는 이익에 주목해서 지구의 공간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특히 현대의 세계는 자본주의 질서가 팽창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의미심장 합니다. 자본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당연히 국민경제의 성장을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열강과 제국주의도 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대놓고 식민지를 개척하는 경우는 없지만, 여전히 다국적기업이나 국가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지경학은 세계의 경제에 대한 거시적인 시야를 제공합니다. 사실 수업 중에도 지경학이라고 언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종종 등장했습니다. 송유관 등 에너지 공급망이라든가, 철도 항만 도로 등 주요 교통로의 확보 등이 대표적입니다. 경제지리학에서는 개별 기업의 입지, 클러스터의 형성, 상품사슬, 다국적기업의 경쟁과 협력 체계 등을 살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경학에서는 주로 국가, 도시, 지역협력체 등 공적인 이익에 관심을 주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지정학으로 돌아와보겠습니다. 근래에는 지정학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디어의 관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해부한 사례도 많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맥아더의 사진은 아주 유명하구요. 지리 시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지도입니다. 지도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아주 강렬한 자극을 남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구 표면은 둥글지만 그걸 평면으로 펼쳐서 지도를 제작하기 때문에, 모든 지도는 반드시 왜곡이 들어가 있습니다. 지도 제작자가 어떤 왜곡을 얼마나 넣을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는 말은 모든 지도에는 지도제작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고, 담고자 하는 장소에 대한 맥락과 당시의 시대적인 맥락이 반영되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지도는 단순히 보는 데서 끝나지 말고, 읽으면서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동안 수업 슬라이드에 다양한 지도를 소개했습니다. 지정학자들도 자신의 이론을 펼칠 때 가장 설득력 있는 지도를 잘 활용했구요. 사실 그런 측면에서 메르카토르 도법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메르카토르도법은 목적지까지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니어도, 정확한 방위를 알려주는 항해용 지도입니다. 하지만 학교나 가정에서 벽걸이용 지도로 오랜 기간 활용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적도를 중심에 두고 투영한 지도이다보니 고위도 지방의 왜곡이 아주 크게 나타납니다. 아무래도 적도 주변의 국가들은 상관이 없는데, 고위도에 위치한 선진국들이 지나치게 커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프리카 대륙이 러시아보다 훨씬 큰데, 그린란드가 남아메리카 대륙만하게 표현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고위도에 위치한 선진국이 실제보다 크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동아리티셔츠나 인포그래픽을 보면 아무렇지 않게 대서양 주변의 유럽 중심, 미국 중심의 지도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어색하라고 다른 도법의 지도를 많이 제공했습니다. 고양국제고 학생들이 이제라도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습니다. 강대국의 국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을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수업 중에 사용하는 지도는 가급적이면 한반도가 중심인 지도를 사용했습니다. 이왕이면 고양국제고가 중심에 있는 지도로 제작해서 사용했습니다. 지도에 등장하는 지역도 가급적이면 현지 발음에 가깝게 소개했고, 이왕이면 다소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고위도의 면적이 크지 않게 표현되는 도법의 지도를 사용했습니다.

지도는 여전히 선전선동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이 지도를 제작한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생각해볼 주제들을 넣었습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