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유세 전략에 GIS가 쓰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지도가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건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결국 이 책을 접하고야 말았다.
도시지리에서 민족별, 가구형태별, 소득별 거주지 분포의 일반적인 형태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모식도만 보고 명료하게 정리되어 참 간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 세기 전, 그걸 다 카운티별로 다변량회귀분석을 계산했다는 것을 듣고 몹시 놀라웠다.
시대가 바뀌어 방구석에서도 컴퓨터와 프로그램만 있으면 공간정보를 주무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니 이제 꼭 컴퓨터에 얽메이지도 않는다. 생각해보니 웹기반도 발달해서 프로그램도 얽메이지도 않는다.
그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출해낼 수 있는 기반은 반세기 전보다 훨씬 나아진 셈이다. 근데 인류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성능의 연산장치보다 훨씬 좋은 스마트폰을 가지면 뭘하나. 결국 못쓰면 그만인데.
지리정보시스템 수업이 아직은 학교 현장에 자리잡지 못했다. 날것의 데이터에서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잘 추출해내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문제점이 아직 많다. 일단 날것의 데이터 자체가 아직 풍부하지 않다. 통계청 국토지리정보시스템, 교통카드 빅데이터 정도가 떠오른다. 거친 데이터는 시도단위고, 많이 자세해봐야 읍면동단위다. 세종시는 격자단위로 분석한 지도를 공개하는데, 아마 좌표에 기반한 데이터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카드사나 통신사에게 데이터를 날것으로 받아 필요한 것을 뽑아 가공하고 싶은데, 막대한 금액을 주고 구매해야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당이나 기업처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GIS가 지금 당장 좋아지겠지만, 교육에 오려면 아직 먼 얘기같다.
게다가 학교에서 기능을 익히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미술 수업에서 표현을 배우려고 그래픽 프로그램을 쓰게 되면, 필연적으로 많은 시간을 프로그램 자체를 설명하는데 사용해야한다. 마찬가지로 지오코딩하는 법, 좌표체계나 도법 세팅하는 법, 레이어 속성 쓰는 법 등을 한참 가르쳐야한다. 들이는 시간이 큰 데 비해, 너무 기초적인 부분이라 당장 실용적인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마이크로지리정보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려운데를 긁어주는 시원한 지리정보 책이다. 사례는 풍부하고, 설명은 간단하다. 특히 GIS 전반에 대해 정리한 대목이 와닿았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왔던걸 어쩜 그렇게 저자가 명료하게 하나하나 강조하는지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지리정보를 분석할 때에, 분석의 단위는 가급적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건물 몇 개를 묶은 블록단위로 분석했다. 지리에서 보는 가장 작은 스케일의 단위가 건축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거의 이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작은 단위가 쓰인 셈이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기초데이터를 강조한 점도 좋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오는 법이다. 빅데이터가 각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날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왕이면 가공이 덜 들어간, 많은 데이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지리정보 수업을 하고 싶은데 정작 원하는 데이터를 제공해줄 수 없을 때가 많으니까 이 부분은 더 와닿았다.
통찰력을 강조한 점도 좋았다. 복귀한 전투기가 얻어맞은 위치를 객관적으로 통계낼 수 있지만, 그걸 분석해서 의미를 뽑는건 결국 인간의 통찰력이다. 컴퓨터로 계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결국 우리가 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래 다루고 깊게 보다 보면 생기는 시야가 있는데, 숙련노동자에게 인적자본이 축적되듯이 그건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다. 그래서 GIS수업은 단순한 테크닉 습득에 그쳐서는 곤란하고, 지리정보를 분석하는 공간적인 사고능력 신장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지도 표현을 강조한 점도 진짜 좋았다. 사실 GIS는 지리 전공자만의 영역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것. 물론 좋다. 근데 결국 모든 공간정보는 지도의 형태로 인간에게 전달되어야한다. 전달. 아무리 맛있고 영양이 훌륭한 음식이어도 갈아서 쓰레기봉지에 담아서 주면 감동이 없다. 훌륭한 내용을 담은 지도인데, 표현방식의 고민이 부족해 시각적 완성도가 낮으면 그렇게 아쉬울 수 없다. 지도학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정말 좋았다.
마지막으로 모든 분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사람을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 지리정보는 힘이 있다. 앞으로 성장할 것처럼 보이는 분야인 GIS는 도구이고 기술일 뿐이다. 그런데 그 힘이 거대자본이 더 성장할 수 있게 도울 것이 뻔하다. 강한 권력이 더 성장할 수 있게 만들 것이 뻔하다. 그래서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더라도, 그 기술이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이 마음에 닿았다.
뉴딜로 건설한 댐은 안정적인 용수공급과 전력생산으로 보답했다. 우리의 수많은 고속도로는 전국민의 생활권을 묶어주었다.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이 훗날 벤처의 성장을 이끌었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는 원래 그런거 아닌가. IMF 극복 시기에 만들어낸 정밀한 수치지도들은 지금 GIS 성장의 밑바탕이 되었다. 아직 GIS기업들은 대부분 공공 발주로 먹고사는 중소기업이지만, 계속 이러라는 법은 없다. 메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던 사이트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초거대 검색포털도 생겨났듯, GIS 회사 중에 몇 쯤은 10년 뒤 공룡처럼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불과 한 해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올해는 벌어지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상상해본다.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지역사회의 이슈를 연결하고, 관련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나름의 지도를 만들어내는 그런 수업. 그 지도가 경주 남산 돌부처들의 위치와 얼굴이 바라보는 방향을 정리한 것일수도 있다. 학교 주변 도로 20개 지점의 미세먼지를 시계열적으로 측정해 가로수의 미세먼지 저감효과를 표현할 것일수도 있다. 동네별 5세 미만 아동의 수나 신혼부부의 수를 기반으로 기존 어린이집과 일정거리 이상 떨어진 새로운 어린이집의 입지를 분석한 것일수도 있다.
이미 수학 수업시간에 보로노이 다각형을 이용해 소방서 입지의 원칙을 추론하는 아이들이다. 언젠가 지리에 볕들 날이 온다면, 아이들의 재능이 GIS수업에서 뛰놀 수 있는 날도 오길 바란다. 그 날이 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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