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하비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는 봄이었다. 교수님과 함께하는 첫 답사는 세종시를 지났다. 안내판에 있던, 세종시의 심사를 맡은 세계적인 석학. 이후 공부를 하며 여기저기에서 종종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도시지리였다. 도시의 팽창을 자본주의로 풀어내는 명료한 정리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작 실제로 어떤 식으로 내용이 전개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매번 요약 정리되어 소개된 짧은 토막만 살펴보고, 정작 하비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학생들이 물어보기에 이런저런 대답을 하다가 새삼 깨닫고, 늦었지만 이제서야 대표적인 저서라기에 급히 구매하게 되었다.
희망의 공간에서는 예전에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단어들이 다시 등장했고, 대부분의 내용이 충분히 어려웠다. 책을 덮은 이 순간까지도 확실한 것은, 내 것으로 흡수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남는 알싸함처럼, 여전히 메시지가 강렬하게 맴돌고 있다. 지리적 불균등 발전. 세상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간이 아니라 공간에 주목하는 변증법도 새삼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이런 사람이 심사한 세종시가 원안대로 꾸준히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브라질리아나 찬디가르처럼 교과서에 등장할 도시가 되지는 않았을까. 평등한 도시라는 이상을 선보이려 노력한 모습이 인류에게 드러나지는 않았을까. 하다못해 정도전의 한양처럼 하비의 세종이 새 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모로 아쉽다. 동시에 한양이 서울이 아니듯, 세종도 상황에 맞춰 꿈틀거리고 변화했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책을 볼 때 부록은 보통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부록은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상상으로 유토피아처럼 서술한 부분이었다. 하필 그 시기가 2020년으로 설정되어 있어 볼 수 밖에 없었다. 세상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는데, 희망의 공간은 어떻게 수정되었을지 살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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