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가르친다. 정확하게는 언어의 분포와 전파를 가르친다. 인간의 문화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문화지리에서 언어가 작은 주제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언어학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공용어, 국어, 모어, 제1언어, 제2언어, 어족, 어군, 문자, 분화, 피진어 등의 개념을 설명한다.
외국어 전파담은 실로 놀라운 책이다. 미국 사람이 외국어인 한국어로 외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기 때문이다. 전근대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하는 텍스트 중심의 문해능력부터, 제국주의 시기를 거쳐 사회자본으로 언어가 기능하는 양상과 회화의 중요성 확대 등 외국어에 대한 큰 흐름을 살펴준다.
특히 언어와 교육의 관계를 중요하게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제국주의가 원주민은 강제로 교육하고, 흑인노예는 교육에서 배제시키는 전략은 실로 놀라웠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일본어 교육으로 치환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일본,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아일랜드, 르완다 등 제시된 사례들도 눈에 설지 않아 좋았다.
언어에 대한 조심스러운 예측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6천여 개의 언어로 시작한 21세기이지만, 모어 화자가 적은 언어는 소멸할 예정이다. 그리고 세계의 패권을 가진 영어의 지위는 약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윈도우나 카카오톡 등에서 플랫폼 장악의 중요성을 보고 자란 세대인데, 인간 사고방식의 플랫폼인 언어가 잠식당한다는 점은 무섭기도 하다.
동시에 교통지리도 떠오른다. 셀 수 없이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허브앤스포크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 철도나 고속도로에서도 경부선과 호남선 부설 과정에서 최소이동거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적당한 분기가 이루어졌고, 항공에서도 동북아거점공항으로 인천공항이 부상하였다. 하지만 결국 준비가 되면 포인트투포인트에 가까워지게 된다.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그러하고, 직항이 그러하지 않은가.
언어도 당분간은 허브앤스포크 시대일 것이다. 영어를 필두로 주요 수십여 개의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허브 역할을 하며 성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포인트투포인트로 바뀔 것 같다. 사전이 있고, 충분한 교육을 통해 재생산이 가능한 언어들 사이에서는 외국어 교육이나 통번역 시스템 등이 자리잡아 갈 것이다. 이미 상당부분 그렇게 진행 중이기도 하다.
지리교육에서는 규모에 따라 상이한 다층적인 시민성을 강조한다. 커뮤니티의 일원이고, 도시의 시민이면서, 국가의 국민이고, 지구촌의 세계시민이기 때문이다. 다중시민성만 있을리가 없다. 해동제국기에서 신숙주가 한자로 일본과 소통했듯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다중언어로 필요한 의사소통을 하는 시대가 열릴 것 같다.
문제는 한국어도 잘 사용하지 못해서 가끔 어버버하는데, 여러 말을 넘나드는 시대가 오는 것은 두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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