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상징성을 담은 추상적인 문구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매우 직설적이었다.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는 구밀료프의 역사지리 저서이다. 프레스터 존, 혹은 사제왕 요한. 고지도와 세계관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기독교 질서가 지배하는 중세 이야기는 빠지지 않다보니, 그냥 중세 유럽사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책 후반부에 지도와 도표와 연대기로 정리되는 그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루는 방대한 책이었다. 배경지식이 없으면 건드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메세지는 분명하다. 그런 민족과 인물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막연하게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정치적 혹은 민족적 동일체로 간주해버리는데, 유목민족이 사는 그 곳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웅변이었다.
특히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지리학자의 강점이 묻어나온다. 거시적인 기후 동향을 아랄해와 카스피해와 발하슈호의 수위를 연결지으면서 설명한다. 만주에서 동유럽평원에 이르는 거대한 권역을 폭넓게 다루기도 하다가, 사료 하나하나의 검증을 수행하며 자세히 다루기도 한다. 특히 유목민족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흔적이 비는 틈틈을 채워내는 내삽법이 훌륭하다.
저절로 유럽과 아시아가 아닌 유라시아라는 관점이 생겨나며, 오리엔탈리즘은 박살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특징을 뚫고 나오는 특징이 있다. 원전에서 중역이 있었나보다. 가뜩이나 다루는 개념도 많은데, 읽기가 너무 고약하다. 한국은 아마도 칸을 의미할테니 한자나 영어를 써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몽골의 반사이클론은 부디 고압대의 의미였기를 바란다. 물리지리랑 물리적 지리라는 단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환경에 대한 설명이면 자연지리가 더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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