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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직뿌직

문명의 붕괴

by Thisis Geoedu 2019. 8. 1.

문명의 붕괴는 환경에 대한 지리책이다. 환경교육이 가진 중요성에 비해, 현실적으로 한국의 중등교육에서 환경의 입지는 좁다. 그래서 지리교사이기에 환경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가 중학교에서 환경을 수업한 적도 있고, 고등학교에서도 교과를 가르치는 틈마다 집어넣었다. 김포평야의 홍도평 서식지 파편화에서 시작해서 스모그, 미세먼지, 보팔, 기후변화와 환경정의를 다룬 에어컨 수업까지. 이런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사실 스스로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있다. 지리교육에서의 환경은 무엇인가. 다르게 표현해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왜 가르치는가'이다.

지리교육에서 환경으로 무엇을 가르칠까. 이미 교육과정 속에 있는 지구온난화 등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문제는 내용의 상당수가 고등학교 환경과학과 겹친다는 점이다. 환경의 내용 지식에 해당하는 것들이 여러 교과에서 욕심내서 가르치고 싶을 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지리수업이 아니어도 가르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스모그의 발생 과정이나, CFCs가 성층권에서 분해되고 결합하는 과정 등은 당연히 과학선생님이 훨씬 잘 가르쳐주신다. 그럼 결국 국경을 넘는 환경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집중해야 하는 것인가. 산성비 문제의 국제적 협력과정은 사실 국제정치의 영역에 가깝다. 바젤 협약이 맺어지게 된 과정에 대해 사실 정확하게 알고 있지도 않고, 구체적인 규정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럼 대체 환경의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이 책에서는 지리교육에서 다룰 수 있는 아주 폭넓은 사례를 제공해준다. 미국 몬태나, 이스터섬, 태평양의 군도들, 아나사지, 마야, 그린란드, 뉴기니, 르완다, 아이티, 중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등 사례가 몹시 풍부하다. 지리교사들은 아이슬란드의 지형형성과정과 기후여건이 어떠한지 모르는 경우가 없다. 그리고 동시에 토양과 농업과 인구와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모르는 지리교사도 없다. 이 둘을 연결짓는 사고는 다른 어떤 교과보다 지리교사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환경이 가진 특수성, 즉 여러 영역에 방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특성과 지리의 장점을 연결했다. 자연지리의 주요 요소들과 인문지리의 주요 현상들을 아무렇지 않게 연결지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환경에 대한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관점과 연결을 가르치는 것이 지리교육에서 중요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지리교육에서 환경을 왜 가르쳐야 할까. 이 책이 사례들의 전달에서 끝났다면 훌륭한 문화인류학 책이지 지리교육이나 환경교육에 쓸모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고맙게도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놓았다. 사실 환경에 대한 책을 읽으면 항상 뒷 맛이 쓰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더 먼저 경각심을 가진 사람들이 무지한 대중들을 가르친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소시민이 가진 힘이라고 해봐야 모래처럼 작다. 그치만 투표용지와 소비할 권리가 손에 있지 않은가. 대중이 바뀌면 사회를 바꿀 힘이 생긴다. 양식 있는 대중을 길러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표는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사에게 아주 중요하다. 게다가 환경을 생각하는 대중이라니. 이 책을 읽는 지리교사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어준다.

몹시 훌륭한 책이다. 다만 다소 두껍고, 개념에서 살짝 어려운 부분들이 등장한다. 학생들도 다가가기 쉽게 말도 쉽게 풀어주고 내용도 줄인 버전도 나와서, 일선 학교 현장에서 지리수업 때 독서교육으로 널리 읽히는 책이 되면 좋겠다. 관심 있는 학생들만 모아서 한 학기 내내 이 책만 읽으며 수업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이름만 믿고 뽑았는데, 이런 책을 접하게 되어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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