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무엇일까요? 스펀지라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한동안 '땅은 □□□다' 하는 식의 문제가 유행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지리를 전공하고 있지만, 지리를 배운다고 했을 때 세대별로 지리에 대한 인식이 다름을 느끼게 해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20대에게 지리를 배운다고 하면 맛집이 어디있는지, 여행은 어디가 좋은지 물어봅니다. 40대에게 지리를 배운다고 하면 앞으로 땅값이 오르는 동네는 어디인지 물어봅니다. 60대에게 지리를 배운다고 하면 묘지를 어디에 쓰면 좋은지 물어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리에 대한 인식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풍수지리부터 국토개발과 여행까지 모두 지리와 관련되어있는 개념이긴 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 선조들은 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땅은 무엇일까요? 우리 선조들은 땅은 어머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젖을 먹이고 아이를 품어주고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찬가지로 땅은 우리에게 식량을 주고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줍니다. 이를 유식한 한자 말로 표현하면, 땅(大地)이 어머니(母)같다는 의미의 대지모사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음양오행설도 영향을 끼칩니다. 음양은 모든 것이 음(陰)과 양(陽)으로 이루어졌다는 동아시아의 철학입니다. 땅과 하늘, 물과 불, 달과 해 등등. 세상이 두 가지의 조화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오행은 좀 더 쉽습니다. 다섯 가지라는 건데, 동서남북 네 방향과 중앙 등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다섯가지는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못들어봤다구요? 아마 그럴리가 없을 겁니다. 화, 수, 목, 금, 토가 그 것이거든요. 우리는 요일에서도 오행 사상을 발견할 수 있고, 태극기에서도 음양 사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토대 위에 신라 말 중국에서 풍수지리 사상이 들어옵니다. 풍수지리 사상은 바람(風)과 물(水)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땅의 모양을 잘 살피면 좋은 땅, 이른바 길지나 명당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우리나라는 풍수지리 사상을 잘 발전시켜 수도를 정할 때에도, 묘지를 쓸 때에도, 집을 지을 때에도 널리 활용하였습니다. 무려 천여년 동안입니다.
현대 중국에서도 풍수는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풍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쓸데가 없는 사상으로 보이니까요. 하지만 천여년이나 발전시켜온 사상에 의미가 없을까 싶어 학자들이 연구해본 결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사는 데에 유용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이 사는 곳, 이른바 마을이 들어서기 좋은 땅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풍수사상이라고 했으니 바람과 물만 기억하면 됩니다. 바람은 막고, 물은 얻으면 되는건데, 이를 유식한 말로 장풍득수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은 배산임수인 땅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배산은 뒤에 산을 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뒤는 북쪽입니다. 북쪽에 산이 있으면 장점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하는 것은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입니다. 북쪽에 산을 두면 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산이 가까우면 땔감 등을 구하기도 쉽고, 외적에게 노출도 적습니다. 그럼 남쪽까지 산으로 둘러쌓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남쪽은 해가 뜨는 곳이라서, 해를 가리면 농사도 잘 안되고, 겨울에 춥습니다. 그래서 배산에 해당하는 곳은 남쪽으로는 트여있는 곳을 말하고, 일조량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임수는 물을 가까이 한다는 뜻입니다. 인체는 70%이상이 물로 이루어져있고, 물 없이는 일주일도 살 수 어렵습니다. 그래서 물이 중요합니다. 물은 어디서 구하기 쉬울까요? 물론 하천 주변입니다. 하천 주변엔 흐르는 물도 많고, 땅을 파면 지하수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천 주변으로는 하천이 실어온 흙이 쌓여 평야를 이룹니다. 평야에서는 당연히 농사를 짓기 좋습니다. 먹을 것이 풍부한 땅이니 아무래도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오래 된 마을, 전통촌락은 배산임수의 입지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 땅에서 오래오래 살아온 우리 선조들이 얻어낸 지혜라고 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사는 곳을 떠나서, 국토를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한반도는 국토의 70%가량이 산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산을 어떻게 보는 것인가는 사실상 국토를 어떻게 보는 것인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산은 흐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은 땅 중에서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 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도가 높고 낮은 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산줄기는 백두산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큰 가지와 작은 가지로 구성되었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표현한 것이 산경도입니다. 산은 주변보다 높은 곳이기 때문에 물이 흐를 수가 없었고, 다시 말하면 산은 하천을 나누어주는 경계를 만듭니다. 이를 분수계라고 부릅니다. 우리 선조들은 산을 분수계로 인식한 셈입니다. 이러한 인식에는 장점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에 학교가 언덕 위에 있는 경험을 해본 친구들이라면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언덕을 올라가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차라리 먼 거리를 편하게 돌아가지, 가까운 거리더라도 올라가는 것은 너무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활권은 보통 하천이 흐르는 영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산경표를 활용하면 산을 생활권의 경계로 보면 되기 때문에 인간 생활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상황이 달라집니다. 일본인 고토 분지로는 일본에서 되게 유명한 지질학자입니다. 그는 지질학을 제대로 배우고 나서, 일본의 식민지가 될 한국에 대해서도 답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한반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나중에 식민지가 되고 나서 개발하고 수탈하기 편해지니까요. 그래서 일본인 학자가 한국의 산지를 잘 살펴보고 결론을 내립니다. 현재 겉으로 드러난 산 뿐만 아니라 먼 옛날 땅이 어떤 힘을 받았을지, 땅 아래에 어떤 지질구조가 있는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지도로 표현한 것이 산맥도 입니다. 평상시에 낙동정맥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까요 아니면 태백산맥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까요? 당연히 태백산맥일 것입니다. 산맥의 분류는 근대 이후 산을 지질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서의 산맥은 실제 산지 분포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땅에 금이 가 있는 경우를 지질 구조선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곳은 다른 곳보다 일찍 깎여나가 하천이 흐르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등산하시는 분들을 주축으로 산맥보다는 산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종주 등이 그것입니다. 실제 우리의 삶과도 밀접하고, 산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는 산경도가 다시 관심을 받는다고 하니 지리선생님이라 그런지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ㅜㅜ 엉엉
오늘은 우리 선조들이 국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시간엔 우리 국토에 대한 생각이 표현되어있는 실제 유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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