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오랜 기간 쌀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국가였다. 산업화는 1960년대 이후 극히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그 전까지는 기후가 따뜻하고 평야가 넓은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조선시대까지 하삼도로 불리는 호남, 영남, 충청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급속한 변화는 그 이전과 이후의 공간구조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도시화는 도시 인구의 비중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그러하듯, 이러한 도시화는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여건이 마련된 것으로 간주되는 수위도시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중앙집권적 체제와 군사독재와 산업화는 우리나라의 도시화에 독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촌향도의 목적지가 되는 도시가 특정 권역으로 한정되게 만든 것이다. 수도권의 지나친 집중, 영남권의 산업 집중, 균형발전 아젠다로 인한 충청권 성장 등이 그 것이다.
분단 이후 전체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동안, 수도권 인구는 열 배로 늘었다. 유일하게 호남권은 인구가 줄었다. 인구변천모형의 2단계와 3단계를 지나는 과정이었으니 자연증가가 실로 어마어마한 시기였는데, 호남권만 유일하게 엄청난 사회적 감소를 경험한 셈이다. 광복 이후 10대 도시에 광주, 전주, 군산, 목포 네 개가 들어갔으니, 매끈한 로그스케일의 도시체계가 잡혀있었다면 호남권 도시도 성장했으련만 현실은 유일한 광주의 순위마저 떨어지고 있다.
전라디언의 굴레는 우리나라의 공간구조를 여지없이 해부한다. 중앙정치의 엘리트 구성부터 선거 결과, 대형 프로젝트와 토호의 비리까지 구석구석 낱낱이 밝힌다. 세계 어디든 도시화나 산업화 과정에서 국토공간구조가 변화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공간 불평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현상이 아니다. 중앙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균형개발정책을 실시하든, 각 지역에서 역량을 신장해 내생적으로 발전 가능성을 끌어올리든, 동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것이 사람들의 의식이 될 것이고, 독재국가에서는 집권자의 의지일 것이다.
사실상의 서울공화국에서 지방은 내부식민지라는 비판까지 받는 상황이 되었다. 호남의 지역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호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지역문제의 출발점으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람들이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아야한다는 시사점을 던지는 문제작으로 충분히 가치있다.
'뿌직뿌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 이주 생존 (0) | 2022.09.04 |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0) | 2022.08.20 |
고기의 역사 (0) | 2022.07.11 |
최초의 질문 (0) | 2022.07.04 |
제3의 성찰:자유와 통일 (2) | 2022.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