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준다는 지정학의 기초적 견해와 함께 바다의 중요성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대륙세력을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강조하고 싶은 학자는 바로 할포드 맥킨더입니다. 영국의 정치지리학자이자 런던정경대학교의 창립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을 연결해주는 학문으로 지리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맥킨더는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는 지리적 축에 주목합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지리상의 대발견을 이어가는 시대에는 바다로 탐험하며 지도를 만들고 식민지를 개척했습니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시야를 더 넓히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일단 유럽과 아시아 대륙은 완전히 붙어있는 형태로, 자연적인 구분이 어렵습니다. 우랄산맥으로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대단히 높고 험준한 산맥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유럽에서 중국 북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내부에 발달한 초원지대는 문명 교류의 고속도로처럼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말을 순치하여 가축화한 유목민들은 엄청난 기동성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유럽 역사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게르만 족의 대이동을 일으킨 훈족이나 세계 최대 제국을 만들었던 몽골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유라시아 대륙 내부는 제 아무리 강력한 해양세력이라고 하더라도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열려있는 항해 가능한 큰 하천은 여러 산맥으로 막혀있어 내륙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유라시아 대륙 내부에 있는 대부분의 하천은 북극해로 흘러가는데, 북극해는 얼어붙어 있어 선박으로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기마 유목민의 무대였던 유라시아 대륙 내부는 선박의 진입이 불가능한 셈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가 만들어지면 넓은 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대량의 자원와 군수물자를 이동시킬 수 있게 됩니다. 말에서 선박, 선박에서 철도로 교통수단이 바뀌면서 결국 다시 유라시아 대륙 내부는 세계 정치를 움직이는 핵심이 된다는 뜻이고, 맥킨더는 이를 추축지역이라고 불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도 많고 생산도 많은 유라시아가 세계섬이고, 그 밖에 오세아니아나 아메리카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섬 중에서도 추축지역이 노른자라고 생각한 셈입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 독일과 러시아가 성장하면서 둘이 결합되면 거대한 대륙세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보았고, 동유럽 일대를 포함하여 심장지역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동유럽을 지배하는 세력은 심장지역을 장악하게 되고, 심장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은 세계섬을 장악하게 되고, 세계섬을 지배하는 세력은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결국 동유럽에서 누가 패권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간단하고 명료한 인식이 맥킨더 이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세계의 자연지리를 알아야 세계의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통합적인 사고가 있습니다. 역시 지리를 공부한 학자라서 통합적인 사고가 익숙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대륙세력의 확장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당시의 시대상황도 이해가 잘 됩니다. 대륙세력을 대표하는 러시아와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대영제국과 유라시아대륙 곳곳에서 충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이 대표적이고, 한반도에서도 절영도 조차나 거문도 점령 등으로 연결됩니다. 이 시기를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부르는데, 지도를 펴놓고 함께 살펴보면 그 양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장지역 이론에 기반해 살펴보면 독일 제3제국과 소련의 관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맥킨더의 사고체계는 미국의 스파이크맨에게 받아들여집니다. 평화의 지정학을 쓴 학자입니다. The Geography of Peace라서 번역어로는 지리학이 맞긴 합니다. 지정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얇기도 하고, 지리적 문해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제작, 투영법, 세계지도, 지리와 외교정책, 지리적 위치와 힘의 분포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매킨더의 견해까지는 계승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심장지역에 대한 해석이 다릅니다. 스파이크맨은 하트랜드의 주변부를 림랜드라고 부르고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실 심장지역은 기후가 거주에 불리해 인구가 많지 않은데, 림랜드는 인구밀도도 높고 문명이 발달한 역사도 훨씬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림랜드를 통제해야 유라시아의 패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견해를 강조합니다. 미국과 소련이 동맹국이었던 2차대전부터 대륙세력인 소련을 봉쇄하는 전략을 주장했다는 점도 신기하고, 이후 냉전시기 미국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된다는 점도 대단합니다.
유럽에서 나토를 구성하거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미국이 참전하고, 소련과 중국의 사이를 벌리면서 수교하고, 아프가니스탄 침공시 무장세력을 지원해주는 등 미국은 림랜드 곳곳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아냈습니다. 고전지정학이 전쟁을 합리화하는 학문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긴 했지만, 정작 미국의 국정 운영에 지정학은 깊숙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고 생산력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 거대한 대륙이고, 세계 정치는 유라시아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맥킨더의 심장지역 이론은 오래 전 이론이지만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기게 합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과 러시아는 누가 통치하는지 차이가 나지만 지정학 관점에서는 심장지역에 자리잡은 국가이고, 강력한 대륙세력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이 동유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에 침공하겠다는 판단을 왜 내렸는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왜 비판하는지도 지정학과 함께 생각해보면 맥락이 파악됩니다. 세계를 보는 눈이 지리에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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