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대단하다.
사실은 출발이 좀 그렇긴 하다.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 주류보다 비주류에 속하는 부분이고, 지리학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근데 그 두 비주류 집단의 교집합인 맑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정을 받는 학자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을수록 소속된 집단에 기대게 된다는데, 하비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나 싶다.
데이비드 하비의 세상을 보는 눈은 그야말로 하비의 모든 것이다. 생애를 따라가며 발표했던 중요한 글들을 엮어놓은 것이다. 흥미를 느꼈던 지리학의 모든 것들은 모두 수십년 전 하비가 건드려놓은 분야였다는 점을 확인하고 놀라고 또 놀랐다. 도시지리나 사회지리에서 도시의 빈곤 문제와 계량적인 접근 방식을 다루었다. 사끄레꾀르 성당의 역사지리와 신문화지리 사례도 하비의 연구였다. 2차대전 이후 미국 도시의 교외화 현상도 자본 축적의 공간적인 특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견해 역시 하비였다. 중국의 인프라 투자도 하비가 설명하니 명쾌했다. 새삼 세종시 설계 심사에 하비가 있었다는 점이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놀라웠다.
아무래도 맑스주의다보니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몰락하기를 바라는 기우제 같은 느낌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모두가 현상만을 보고, 숫자로 더 정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집착하는 세상처럼 보인다. 반면에 이렇게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우리의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경고해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자라는 사람들은 이 정도의 그릇을 가진 사람인가보다 싶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통일은 대박이라는 구호가 생각났다. 세계적인 경제 강소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에서, 감상적인 민족주의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한반도 통일에서 시들어갔다. 자본주의 국가답게 정치인들이 노골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추구하기 위해 통일을 언급하는 시대가 왔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하비의 시선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가치있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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