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지정학을 수업한지 4년째다. 고전지정학과 현대지정학을 간략하게 살피는데, 학생들은 고전지정학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설명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불이 붙었다.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는데, 스파이크맨의 '평화의 지정학'을 언급하는 경우가 잦았다. 간결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이었다.
강대국 지정학은 미국의 지전략을 다루고 있다. 림랜드를 강조한다고 한 줄로 간단하게 수업에서는 마무리하지만, 사실 지금의 세계를 주름잡는 초강대국 미국이 있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왔다. 미국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현재의 국제질서를 파악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 도움이 된다. 2차대전이 한창인 그 시점에 미국의 지난날과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분석했는데, 지금의 상황과 연결하며 읽다보면 세상을 내다보는 혜안이 놀랍다.
워싱턴도 루즈벨트로 바뀌지만 애팔래치아는 그 자리에 있다. 러시아제국은 사라지고 소련도 해체되었지만 러시아는 러시아다. 지리적 특성은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데, 그 부분을 간과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전쟁광이라서 침략하기 위해 지정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의 가능성을 파악해야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의 서반구 내에서 미국의 지위와 세계 전체에서의 상황을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시도가 놀랍다. 지리는 단순히 도시의 위치를 암기하는 것으로 아는 학생들이 참 많다. 물론 중등교육까지는 그 것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지식의 블럭을 모아 이토록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역량이 참 부럽다. 2020년대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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