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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직뿌직

시공간 압축

by Thisis Geoedu 2024. 9. 4.

교양이 넘치시던 옆자리 선생님께서 어느 날 물으셨다. 데이비드 하비는 왜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고. 난 잠깐 생각했다. 이미 유명해서 유명하다는 것은 답이 될 수 없었다. 맑스주의 지리학자라고 답했다. 맑스주의 학자는 많을텐데 왜 유명한지에 대한 답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연했다. 맑스를 수십년 강독한 지리학자라고. 그런 경력은 대단히 드물테니 이유가 설명되는 듯 했다.
시공간 압축은 그 동안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하비 입문서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분명 매력이 있는데 도저히 다가갈수가 없었다. 마치 불닭볶음면처럼 느껴졌다. 너무 맵고 얼얼해서 맵찔이에게는 버거운 것처럼, 읽긴 읽는데 제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까르보불닭이나 치즈불닭볶음면이 있으면 그래도 좀 엄두가 난다.
제목이 시공간 압축 맑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 입문이다. 그야말로 정직한 이름이다. '야 너두 하비 맛볼 수 있어', '젊은 하비에 대해 썰 푼다' 정도라면 더 실감날 것이라 생각한다. 친절한 구어체로 쓰여있어 전달력이 우수하고 지리학적 맥락을 정리해주다보니 자꾸 지리사상사 강의노트가 생각났다. 그래도 학구적인 교수님이 쓰셔서 공식적인 어휘가 살아있는 강의노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야말로 읽는 맛이 있는 글이다. '자낳괴', '명징' 등 글 곳곳에서 2020년대가 팔딱팔딱한다.
자본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따끔하게 지적해왔다. 금융자본으로 인한 붕괴의 위험을 미리 예견했다. 그냥 원래 대단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삶을 따라가니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계량적으로 분석하고 지도화하다가 30대 중반 이후 학풍이 달라진 것도 새삼 신기하다. 진짜 제대로 더 읽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게 만든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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