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값이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모든 숫자를 외우고 나타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표준정규분포를 따른다면 평균도 훌륭한 대표값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평균의 종말에서는 더 이상 평균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여러 영역에서 평균에 가까운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은 당연하기도 하다.
문제는 교육에서 평균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평균에 맞춘 수업이 그 누구에게도 의미 없어질 것이라는 점은 수업 현장에서 종종 느끼곤 했다. 저자는 모든 학생들에게 개별화된 학습을 유도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량이라고 한다. 모더니즘의 산물인 공교육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별화 학습이 얼마나 가능해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학교교육이 뿌리부터 사라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대학생 시절에는 Mooc가 대세였다. 요즘 칸아카데미나 듀오링고, EBS의 문제은행을 보면 참 경이울 지경이다.
자동차 운전석 의자의 높이와 각도와 위치를 조절해주는 것이 당연하고, 온열에 통풍도 가능한 시대이다. 여전히 학교의 의자는 딱딱한 나무에 정해진 호수대로 나와있고, 거기에 몸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육이 바뀌어야한다는 메세지는 언제나 아프고, 언제나 와닿는다.
배움의 속도는 모두 다르고, 방식도 모두 다르다.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학생들 하나 하나에 맞춰 도와주는 시스템이 가치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시스템도 배움을 거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교사가 단순히 학습시스템의 안내자만 될 수는 없을 모양이다. 미래 교육은 여전히 아직도 잘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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