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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직뿌직

갈등도시

by Thisis Geoedu 2023. 12. 3.

지리교육과를 다니면 답사를 많이 했겠다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필드가 있는 전공은 답사가 필수적이겠지만, 지리는 많을 수 밖에 없다. 졸업하려면 최소한 일곱 번의 정기답사는 가야했고, 욕심을 많이 부리면 한 학기에 일곱 번까지도 갔다.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되새길 것인가를 충분히 준비할수록 얻는 것은 많았다. 졸업 이후에는 답사를 그다지 많이 가지 못했고, 가더라도 준비가 부족해 배우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

갈등도시는 서울 대도시권의 답사 기록이다. 도시의 역사경관에 대해 세월의 더께가 공간에 축적되어 있다고 설명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살아남아 재현된 극히 일부의 사례만 알고 있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이 대부분이지만 즐거웠던 잠깐만 기억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싶다. 사실 도시의 대부분 공간은 실제 도시에서 생활하는 수 많은 시민들이 살아가는 무대이다. 도시에 랜드마크가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조선시대와 상류층에만 호의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 의식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에는 읍성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개발독재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양반의 문화는 숭상하며 없어진 경관도 만들어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현대 시민사회의 발전 수준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 기지촌, 빈민촌만 가는 것도 아니다. 슈우퍼마켙과 고물상, 점집과 도서관을 모두 다룬다. 학자적인 자세가 기본이 되어 기층문화에 대해 샅샅이 다루는 감각이 예리하다.

조선 후기도 아니고 금석학에 쓸모가 있나 싶었는데, 건물의 머릿돌을 살펴보는 혜안이 놀랍다. 단행본이나 논문이나 기사나 보고서는 당연하고, 간판에서 화장실 낙서까지 모두 문헌이 될 수 있었다. 텍스트에 친절해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여기 사람이 있다, 유곽의 역사, 도시의 승리 등 오래 전 읽었던 책들의 기억이 덕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부천의 천부교 신앙촌부터 노원의 백사마을까지 흥미로운 사례도 정말 많다.

당장 학생들과 어디 답사를 가서 어떻게 보면 된다는 친절한 교과서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찰력을 가지고 답사를 가면 도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하다. 왜 인기인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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