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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직뿌직120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 제목이 상징성을 담은 추상적인 문구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매우 직설적이었다.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는 구밀료프의 역사지리 저서이다. 프레스터 존, 혹은 사제왕 요한. 고지도와 세계관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기독교 질서가 지배하는 중세 이야기는 빠지지 않다보니, 그냥 중세 유럽사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책 후반부에 지도와 도표와 연대기로 정리되는 그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루는 방대한 책이었다. 배경지식이 없으면 건드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메세지는 분명하다. 그런 민족과 인물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막연하게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정치적 혹은 민족적 동일체로 간주해버리는데, 유목민족이 사는 그 곳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웅변이었다. 특히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 2019. 9. 17.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 지리를 전공하면서 배웠던 사고방식은 스케일의 전환을 시도하라는 것이었다. 세상을 볼 때는 하늘 위로 올라가 거대 담론으로 보아야 할 때도 있고, 루뻬를 대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습득한 지식들이 쌓여 지금의 가치관을 만들 수 있었다. 여성주의는 대학에 가서 처음 접했다. 여성주의 지리학과 여성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뒤로 조금씩 더 접하긴 했지만, 여전히 학문적인 이해가 얕다.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는 여성노동에 대한 책이다. 돌봄노동의 여성화, 노동의 이중구조 등 거대한 담론에 비해, 이 책은 미시사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의 어머니, 그 한 사람만 졸졸 따라간다. 읽고 보니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난다. 이렇게 누군가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 2019. 9. 17.
얄팍한 교통인문학 교통은 중요하다. 교통수단은 화물과 사람을 빠르게, 안전하게, 싸게, 편하게, 제때 옮겨준다. 교통은 지리학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요 분야이다. 고등학교의 지리시간에도 자세하게 다룬다. 교통이 지역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얄팍한 교통인문학은 그 동안 교통에 주목해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끌 수 있는 책이다. 짧은 토막의 글이 아기자기한 삽화와 함께 제시되어있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교통에 대해 이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내러티브의 힘을 느낀다. 굳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화와 역사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런 관점은 아무래도 교통망이나 시간 및 비용, 지역 변화 등을 다루는 지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훗날 지리적인 시야에서 이렇게 몽글몽글하게 교통을 다루는 얄팍.. 2019.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