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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직뿌직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by Thisis Geoedu 2024. 6. 30.

대학생때 문화지리학이 정말 재미있었다. 역사지리학도 재미있었지만 신문화지리학도 재미있었다. 문화정치에서 유난히 사회지리학의 맥락이 자주 등장하는데, 정작 사회지리학 수업은 없었다. 그래서 질리안 로즈와 질 발렌타인은 이름만 들어 보았고, 나중에 사회지리학 개론서를 접하며 지리교육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페미니스트 도시지리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다. 1세대, 2세대, 3세대 페미니즘을 어렴풋하게 구분할 뿐 페미니즘 지리학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접한 적이 없었고, 집에 들어가서 전화하라는 인사를 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신선했다. 달빛투쟁이라고 접했던 Take Back the Night 운동이 등장하고 전개된 맥락을 풀어주니 재미있었다.

공중화장실에 대한 부분은 특히 인상이 강했다. 위생이 인류 문명의 근본에 해당하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만, 일상에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살게 된다. 하지만 공중화장실을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그게 왜 페미니즘 투쟁의 노선이 되는지 설명해서 신기했다. 밤에 성폭력의 위협에 놓이는 인도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모든 도시에 대한 이야기였다.

백화점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달랐다. 백화점은 자본주의 경관의 상징이며, 도시인들의 여가마저 포섭하는 대형복합쇼핑몰의 몰링은 구조적인 착취의 공간적 기획이다. 평소에도 사실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에 서민으로 비판적 통찰을 제공하는 논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도시가 화장실을 민간 및 준민간 주체에 의지하게 되고, 비밀번호 등을 통해 출입가능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점을 지적했다.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 해소를 위한 화장실 접근권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백화점의 가치를 역설해서 놀라웠다.

저렴한 집세, 생활 임금, 공공 보육, 의료비와 교육비 부담의 감소가 여성 친화적 도시 비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맑스주의적 비판에 치중하는 여성주의가 가지는 한계점을 지적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경제적 평등이라는 해결책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경제적 측면이 해결되면 나머지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가정이 생기는데, 젠더와 인종과 성적 지향과 장애 등을 투쟁의 주변부로 몰아내기 때문이다.

도시계획과 도시정치와 건축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면서, 원주민과 빈민과 유색인을 표적화하는 교도소 페미니즘으로는 여자의 안전을 개선할 수 없다고 선언적으로 제시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페미니즘 운동은 근본적인 한계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하는 부분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교수인 저자가 제도권인 기성세대라며 페미니즘 시위 주도 세력에게 비판받는 부분은 과연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한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특히 막막함이 더 느껴진 것은 범죄를 예방하는 셉티드 설계에 대한 비판이었다. 결국 환경적 해결책을 상상하며 희망에 부풀어 있는 지리학과 학생들에게, 아무리 조명을 밝혀도 가부장적 질서를 없앨 수는 없다는 한계를 제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가로등이 밝으면 성매매 종사자는 더 어두운 곳으로 이동해야한다는 북미나 유럽의 맥락이 와닿지는 않았다. 특히 콤바히 강이라는 이름으로 보스턴에서 활동한 흑인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사회주의 조직은 어질어질 했다.

도로를 막고 시위하는 중에도 남성이 장작을 패고 여성이 전화를 돌리는 모습과 사회운동조직 내에서의 성폭력은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보여주었다. 제1공간과 제2공간을 나누던 전통적 성역할이 산업도시에서 성매매여성으로부터 도덕적 타락의 전염을 막기 위해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생성하는 맥락과, 세계대전기 도시의 일자리를 대체한 여성들을 전쟁 이후 교외로 이주하며 지리적으로 고립시키는 측면에서 북미의 도시를 페미니즘에 관점에서 접근하는 부분은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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