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은 양정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근무하신 지리 선생님입니다. 특히 국토를 보는 관점에서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지리소고'가 있는데, 조선의 지리에 대한 짧은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한자가 익숙하지 않고 문체가 달라 어색하므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과감하게 다듬어보았습니다.
1. 지리적 단위
지리학에서 ‘단위(Unit)’라는 용어는 두 가지로 사용되는 말이다. 정치적 단위와 지리적 단위인데, 이 두 가지는 일치할 때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조선반도를 8도나 13도로 구분하는 것은 정치적 단위이기 때문에 때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조선반도를 태백산맥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거나, 인천-원산을 연결하는 추가령구조곡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크게 나누는 것은 산맥, 하천 등의 자연적 요소에 기반한 지리적 단위의 구분이므로 이는 바꿀 수 없다.
이러한 지리적 단위가 확고할수록 한 나라의 생활이나 행정구역이 그 역할을 완전히 해낼 수 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군웅할거 시대가 있기도 했지만 항상 통일을 강조하여 드러내는데, 이는 중국의 지리적 단위가 그렇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구경이 국제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어온 것은 아득히 먼 평원 한가운데 인위적으로 국경을 정한 까닭이다.
즉 지리적 단위와 일치하지 않는 정치적 단위를 지키려는 데서 오는 비애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영국과 일본은 큰 대륙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륙의 흥망성쇠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독립해올 수 있었고, 에스파냐는 피레네 산맥 너머에 격리되어 있어서 특이한 역사를 가질 수 있었고, 이탈리아는 알프스라는 자연 성벽에 둘러싸여 3천년의 큰 나라를 만들었으니 이는 모두 지리적 단위가 확실한 까닭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의 지리적 단위는 어떠한가? 설명을 기다리기보다 지도를 한 번 보는 것이 가장 빠른 대답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동쪽·서쪽·남쪽은 말할 것도 없으며, 대륙에 접한 북쪽도 백두산과 거기서 발원한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자연 경계가 매우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이라는 범위가 역사 흐름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긴 했다.
고조선의 국경을 대략 랴오허(遼河)의 본류로부터 연장선이라고 추정한다면 차라리 산하이관(山海關)으로부터 만리장성과 싱안링(興安嶺) 동쪽 지역, 즉 오늘날 둥베이 지역이 조선반도와 합쳐져서 훨씬 커다란 지리적 단위를 이룬다. 이렇게 본다면 위에서 말한 조선반도는 부수적인 단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시대 이후의 경계에 의한 반도의 부분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2. 면 적
개인의 살림살이든 국가의 통치든 공간이 넓은 것이 좁은 것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중국은 유럽만큼 넓고 조선반도 넓이의 50배나 되지만, 행복한 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나라는 대략 조선반도의 5분의 1, 또는 6분의 1에 불과하면서도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살림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강대국보다 나은 점이 있다. 높은 탑을 쌓으려면 이에 걸맞은 기반이 있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몇몇 나라의 면적을 살펴보면 조선반도도 작지 않은 땅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명 면적(평방 킬로미터)
프랑스 550,675
독일 472,063
스웨덴 448,142
노르웨이 323,546
이탈리아 301,254
일본 혼슈 223,500
조선반도 220,740
영국(그레이트브리튼) 217,720
그리스 64,570
덴마크 43,010
스위스 41,374
네덜란드 32,585
벨기에 30,437
3. 인 구
중국은 4억, 인도는 3억이 넘는 인구를 가졌으나, 인구 역시 많다고 해서 자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일본과 러시아의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이나 캐나다와 미국의 소수민족인 에스키모족과 같이 명맥만 유지하기 힘든 경우에는 인류 생활 무대에 큰 발자국을 남기기 어렵다. 다른 나라의 인구를 살펴보면 2천만 명이 넘는 조선의 인구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명 인구(만 명)
독일 6,098
영국 4,420
프랑스 3,921
이탈리아 3,884
조선 2,000
튀르키예 1,335
벨기에 747
네덜란드 681
스웨덴 601
스위스 388
덴마크 327
노르웨이 265
4. 산과 평야
산이 많고 평야가 적은 것은 사실 조선의 가장 큰 결함이라 할 수 있다. 창지앙강, 볼가강, 미시시피강 유역처럼 커다란 생산 기반을 조선반도에서 기대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러나 아주 쓸모 없는 땅은 아니다. 나일강 하류만큼 비옥하지는 않아도 팔레스타인보다는 훨씬 풍족하다. 평야가 넓지는 않지만 2천만 인구가 살아가기에는 넉넉하다.
산이 많인 것은 농사짓기에는 불편하지만 쓸모가 없는것은 아니기 때문에, 산을 저주하기보다는 차라리 감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황무지를 빼고 말할 수 없다.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의 역사는 짙은 안개와 거친 바다의 파도를 빼고 말할 수 없다. 알프스의 작은 나라 스위스가 얼마나 큰 사상을 세계 인류에게 제시했는지 생각해보자. 대영제국의 가장 고귀한 정신적 산물과 위대한 인물이 거의 다 척박한 산악지대인 스코틀랜드 출신인 것을 인식해보자.
미국의 지식인들이 대부분 미시시피강 하류에서 나오지 않고, 애팔래치아 산맥의 동북쪽 출신임을 알고 있는가? 미국의 고귀한 사상가, 훌륭한 예술가, 위대한 정치인은 돌덩이가 뒹구는 산골 마을에서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의 반도가 산지가 많다고 하여 비관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산지는 많지만 히말라야 산맥처럼 거대한 것이 없고, 화산이 있어도 후지산처럼 높은 것이 없다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각해볼 것이 두 가지 있다.
인도 남부의 더위는 지옥과 같아서 한꺼번에 수천 명이 목숨을 읽는 재해가 드물지 않고, 북쪽의 에베레스트 산은 오랜 세월 쌓인 눈을 항상 머리에 이고 우뚝 솟아 있어 흰 모자를 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곳이어야 불교와 같은 거대하고 심오한 사상이 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일부만 말한 것이다.
웅대한 자연에 압도되면 도리어 허다한 미신이 들끓는다. 그 주위에 있는 큰 산, 넓은 사막, 습도와 기온의 심한 변화, 맹수와 독충의 재앙 등 불건전한 요소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온화한 기후와 안정된 자연환경의 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자랑거리가 있으니 반도 강산의 균형잡힌 아름다움 이다. 이에 대하여는 거의 세계 유일의 아름답고 균형잡힌 산천이라 하여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산이 높아야만 한다면 후지산(3,768m)보다 182m가 더 높은 타이완의 위산(玉山)에서 영웅 호걸이 더 많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0m)와 북아메리카의 매킨리(6,200m)와 남아메리카의 아콩가과(7,040m) 등의 산은 모두 우리 백두산 위에 백두산을 더한 것보다 더 높지만, 지혜로운 철학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
오히려 4억 세상 사람들에게 인의(仁義)의 도를 가르쳐 준 큰 스승 공자의 고향에는 천하의 명산이라는 태산이 있지만, 그 높이는 1,450m에 불과하니 우리의 금강산 비로봉보다 188m나 모자란다. 세계적인 철학의 요람이며 예술과 과학의 본토인 그리스 반도가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 대왕 등의 인물을 만들 때 2,500m 이상의 큰 산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은 2,602m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한 베들레헴 근차에는 우리의 북한산(836m)보다 높은 산이 없다. 멀리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에 있는 헤르몬산이 우리 백두산과 비슷한 정도의 산이었다.
세계에서 국민적 자만심이 가장 심한 사례는 아마도 영국민을 첫 손가락으로 꼽을 것이다. 영국 안에서도 더욱 심한 것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니, 대대로 똑똑한 조상과 그들을 만들어낸 고향 산천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자부심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까닭이다. 그렇게나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지역의 주봉은 1,343m 짜리 벤네비스산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동북쪽 언덕지대인 뉴잉글랜드가 미국의 스코틀랜드라고 불릴 정도로 북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인물이 많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지리산보다 더 높은 봉우리가 없고 우리의 소백산보다 더 깊은 산골짜기가 없다.
백두산(2,744m), 관모산(2,541m), 북수백산(2,522m), 묘향산(1,909m), 금강산(1,638m), 지리산(1,915m), 한라산(1,950m) 등의 수려한 봉우리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독립문이 빈약함을 부끄러워할 수는 있어도, 반도의 산지가 높지 않다고 한탄할 것은 없다. 하물며 산세와 평야의 배열과 균형의 아름다움을 논하자면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에 비교할 수 있을까? 뉴욕 부두에 높이 솟은 자유의 여신상에다 비교할 수 있을까?
낭림산 머리 위에 하늘을 향한 왼팔을 백두산 저편까지 높이 뻗치고 장산곶 끝까지 오른팔을 드리워 어루만지려는 듯, 오른다리인 태백산맥은 거제까지 굽혀 올리고 왼다리인 소백산맥은 진도까지 뻗쳐 디딘 듯 하다. 지구대는 허리에 잘록하고 금강산은 가슴에 드리운 노리개인 듯 몸을 가린 비단이 동풍에 나부끼며 녹색 평야를 이루었으니 엷고도 가볍다. 선녀가 구름 위로 솟아 오르는 모습인가? 아니면 자유의 여신이 대륙을 머리 위에 이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형상인가?
5. 해안선
동·서·남 3개 해안 중에 동해안이 가장 단조롭다. 구조선(構造線, tectonic line)과 거의 평행한 해안이어서 굴곡도 없고 섬도 거의 없다. 강원도의 총석정과 함경북도 무수단에 빼어난 경치는 있으나 해운과 어업에 도움이 되는 항만은 비교적 빈약하다. 그러나 이 빈약함은 반도의 남해와 서해에 비하여 비교적 항만이 적을 뿐이지 결코 절대적으로 나쁜 해안이라는 것은 아니다.
함경북도 해안에는 본래 웅기, 청진, 성진 등 여러 항구가 자연적으로 퍼져있다. 나진항은 최근 약간의 공사를 하며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큰 항구로 변해 많은 뉴스거리가 되었다. 나진항에서는 중국의 둥베이에서 나오는 물자를 처리하게 되니, 마치 미국의 오대호 지역에서 나오는 물자를 뉴욕을 통해 처리하는 관계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에 조선질소비료회사가 흥남항을 건설함으로써 어선 10여 척이 전부이던 작은 포구가 갑자기 함경남도 최대의 무역항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도 우리에게는 새로웠다. 이와 같이 사람의 힘을 살짝 더하면 좋은 항구가 될만한 곳은 아직도 많다. 예컨대 원산항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하늘이 만들어 준 거대한 항구이다.
호도반도에 감싸인 영흥만까지 헤아려보면 어김없이 중국 랴오둥지방의 다롄에 뤼순을 더한 것과 비슷하다. 만일 러시아에 원산항 같은 항구가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아마 세계역사는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무역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두 유익한 거대한 항구가 활용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지금은 그저 송도원 해수욕장과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만 있을 뿐이니 우리는 이렇게 좋은 항구가 동해에 있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서해안은 목포, 군산, 인천, 진남포, 용암포 등 좋은 항구가 적당하게 줄지어 있을 뿐더러, 그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섬들과 리아 해안의 작은 항구들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원시적인 항해시대에도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편했다. 더군다나 연안의 경사가 완만하고, 압록강·대동강 등 하구가 깔대기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여러 항구들과 배후지가 원활하게 연결된 것은 동해안보다 조건이 훨씬 좋다. 다만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매우 크다. 동해안의 청진이 0.73m, 원산이 0.83m인데 비하여 목포가 4.33m, 진남포가 6.27m 이며 인천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9.41m 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천과 진남포에는 항만 시설을 설치하였으며, 경기만의 엄청난 조차를 전력 생산에 이용하는 것도 다만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
동해안에는 섬이 거의 없어서 울릉도(72.49㎢)와 마양도(7.06 ㎢)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 반면에 서해안에는 진도(330.9 ㎢). 강화도(290.5 ㎢), 안면도(86.6 ㎢). 신미도(52.8 ㎢), 자은도(50.2 ㎢), 백령도(46.9 ㎢) 등 큰 섬이 많다. 뿐만 아니라 전라남도의 다도해부터 고군산군도, 외연열도, 격렬비열도 등의 작은 섬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남해안은 반도의 동·서해안보다 훨씬 우수하다. 남해안은 굴곡도, 즉 해안선의 길이를 직선거리로 나눈 값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매우 크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것을 일반적으로 쓰이는 리아 해안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특별히 ‘조선식 해안’이라고 이름지었다.
포도 송이에 포도 송이가 맺히듯이, 이삭에 또 이삭이 달리듯이, 반도에 또 반도가 붙고, 섬에 또 새끼 섬이 달린 것이 조선의 에게해(Aegean Sea)라는 별명을 가진 남해안이다. 조선 산천을 말하는 사람은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찬미하거나 백두산의 웅장한 봉우리를 감탄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을 쓰려고 한다면 그 것은 바로 조선식 해안의 모습에 어울릴 것이다. 남해안의 주요한 섬은 제주도(1,869 ㎢), 거제도(389 ㎢), 남해도(300㎢) 등 큰 섬이 있으며, 이외에도 추자군도, 노화군도, 완도,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조약도, 평일도, 거금도, 거문도, 내·외나로도, 금오도, 돌산도, 사량도, 욕지도, 미륵도, 한산도, 가덕도 등등이 있다.
'똑똑한 사람(智者)은 바다를 사랑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산도 앞바다에 작은 배를 띄워 놓고 나갈 길을 찾아 보면 된다. 바다와 육지의 상대적 관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이 허다한 섬과 산허리 사이사이에서 노를 저어 가 보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자기의 머리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미쳤거나 불세출의 영웅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확신해도 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코리아를 검색해보자. 이순신과 거북선의 그림 설명이 있을텐데, 세계인이 조선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다도해의 무궁무진한 조화와 그 기묘한 이치를 파악할 줄 알았던 사나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300년 전에 무수한 적선의 공격에 앞서 위대한 장군을 배출한 곳도 이 해안이고, 19세기 초에 서양의 탐험선이 미궁에 빠져 길을 헤메던 곳도 이 다도해 해안이었다. 러일전쟁 시기 일본 해군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공격하기까지 4개월간 세계의 이목을 완전히 피하여 몰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진해만이 남해안에 있는 까닭이었다. 진해만과 같은 바다가 한둘이 아니다. 이 수많은 항만들이 전시의 군항도 되고, 평시의 어항도 되며, 전략을 가다듬는 훈련장도 되어서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크세노폰 등을 배출하던 그리스의 다도해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도의 몸통과 동서해안을 없애버리고 소백산맥 남쪽만을 백두산에 바로 연결해버린다 해도, 이 ‘조선식 해안’은 지구 위에 영원히 존재하고 빛날 것이다.
결국 3면의 해안선으로 보아도 조선의 국토에 부족함이 없으며, 오히려 해안선만은 과분하다 싶을 만큼 우리에게 은혜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기 후
우리나라는 대체로 북위 33°부터 43°까지 걸쳐 있어서 전형적인 중위도 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륙에 붙어있어 있어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고, 동해안에는 연해주 한류가 흐르고 있기에 비슷한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한랭하다. 위도만 보면 지중해 연안과 비슷하지만, 기후는 그만큼 따뜻하지 않은 것이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탈리아나 발칸반도 등에서는 감람나무나 감귤나무 등 아열대 식물을 재배하는데, 우리는 제주도 등 남쪽 일부에서만 적은 양의 감귤류를 기르고 있을 뿐이다. 조선반도 전체는 사과 등 추운 지방의 과일나무를 재배하는 것이 적합하다. 봄과 가을이 짧고 겨울이 너무 긴 것이 조선반도 기후의 단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얼음 위에서 스케이팅을 하면서 의지를 단련할 수 있다는 것은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축복이다.
조선반도 각 지역의 1월 평균 기온을 살펴보면 유럽이나 아메리카 등에 있는 인구가 많은 대도시와 서로 비슷하다. 조선의 기후는 인간 생활에 부족한 점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부산 2.2도 파리, 교토와 비슷함.
대구 1.9도 베를린, 워싱턴과 비슷함.
서울 -4.5도 시카고, 베이징과 비슷함.
평양 -8.1도 모스크바보다 따뜻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삿포로보다 조금 추움
강수량이 500~1,400mm 내외에 불과해서 일본의 800~3,000mm에 비하여 부족한 듯하다. 그러나 조선의 강수량의 50% 이상은 농작물이 한창 자라는 6~8월에 내리므로, 이를 잘 이용하면 농작물 생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강수량이 다소간 모자란 경향이 있긴 해서, 유럽 여러 나라보다 200년이나 앞선 조선시대 초기에 벌써 측우기를 제작하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이 세계 최초로 과학적인 강우량 계산을 하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이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는 일에도 뛰어났다는 증거가 된다.
게다가 하늘에 구름이 적은 것이 일찍이 천문학이 발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 경주와 개성에 남아있는 첨성대가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맑은 하늘은 그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하였다는 생각을 하면, 이 강산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할 것은 있어도 불만을 가질 것은 없다.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업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지만, 먼저 조선의 자연적 요소만 살펴보고자 하니 인문적 요소와 관련이 많은 산업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7. 위 치
위치는 자연지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요소이다. 따라서 위치를 말하는 것은 곧 결론에 해당한다. 지구의 표면을 적도, 중위도, 극지방의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면, 극지방은 인류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고 적도 일대는 활동적으로 일하기 힘들기 때문에 오직 중위도에서만 문화의 발전을 볼 수 있다.
우리 반도가 북위 약 33°부터 43 °까지 걸쳐 있어서 중위도 지역 중에서도 전형적인 중위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남반구보다는 우리가 속해있는 북반구에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생활하고 있다는 점도 복을 받은 셈이다.
조선은 동아시아의 중심이다. 심장이다. 중심적 위치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좌우할 수 없는 속성을 품고 있다. 영국이 현재 융성하게 된 것은 육반구(陸半球)의 중심에 가까운 것이 큰 요인이다. 오사카(大阪)시가 정치적 변화에 상관없이 몇백년간 일본 경제계에서 여왕 같은 지위를 지켜 온 것도 그 지리적 위치가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하나하나 제시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있다. 그러나 단지 중심적 위치라기보다 한 시대의 심장 역할을 했던 반도 중에서 조선반도와 비슷한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1) 펠로폰네소스반도
인류의 역사가 이집트, 바빌론, 아시리아 등 고대의 국가로부터 로마제국 같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옮겨 가는 중간에 그리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했다. 이전 시대의 모든 우수한 유산을 종합해서 다음 시대에 전달해 준 것이다. 기원전 4~5세기 무렵에 찬란하고도 독특한 문화를 세계 역사에 남긴 그리스는 반도라는 것, 산악이 많고 평야가 적은 것, 북위 30~40 ° 내외에 위치한 것 등이 우리 조선과 매우 비슷하다.
더군다나 그 반도에 또 반도가 달려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매우 복잡하고, 수천 수만의 섬들이 곶과 함께 있어 대륙인지 도서인지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인 다도해 모습은 조선반도의 남해안과 거의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서남아시아의 제국이 지중해 지역으로 뻗어 나갈 때에 반드시 필연코 펠로폰네소스반도를 거쳤고, 로마 군대가 서남아시아를 정복할 때에 그 말발굽 소리가 이 반도에서 먼저 들렸고, 북극곰 러시아의 발톱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나무 뿌리를 파헤치고 두드릴 때에 먼저 진동한 곳도 이 반도였다. 이마저도 두 반도의 신세가 똑같으니, 역사적으로 국제정세에 민감한 곳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를 동정하려한다면 조선반도또한 마찬가지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조선반도에도 자랑할 것이 있을 것이다.
(2) 이탈리아반도
이탈리아반도가 조선반도와 비슷하게 생긴 것은 세계 지도를 한번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반도 전체의 형상도 닮았지만, 면적이나 위도 또한 비슷하다. 지중해 가운데 튀어나온 이탈리아반도에서 1~2세기에 절정에 이르렀던 로마제국의 위력과 오늘날까지 3,000년 문명이 이어졌음을 보자.
그 위치가 지중해의 심장이어서 강한 때에 주위를 지배하기에 편할뿐더러, 약해진 때에도 한가롭게 낮잠만 잘 수도 없는 형편이니 이 또한 조선반도와 똑같다. 이탈리아 반도는 그리스보다 더 중심적 위치인데 비옥한 롬바르디아 평원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그리스보다 규모도 컸으며 역할도 달랐다. 로마의 주도하에 1세기 초 지중해 문명은 활짝 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그리스로서 숭고하였고 로마는 로마로서 강대하였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그리스를 산출한 미인이며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 제국을 양육한 현모이었다. 여인은 아이를 낳는 것으로 죄가 없어진다고 하지만, 여인은 산출한 자녀에 의하여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거룩해지기도 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있지만,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인 셈이다. 무릇 그리스의 예술과 로마의 제도가 어떤 것인 줄 아는 자는 이 두 반도의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두 반도의 지리학적 아름다움을 안다면, 두 지역의 문화가 각각 그 어머니인 두 반도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납득할 수 있다. 지구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도 둘만 찾으라면 서슴없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를 꼽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반도의 남단에는 타란토만(灣) 하나가 멋없이 있을 뿐이다. 이른바 장화 모양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이태리 반도의 끝부분이 맺힌 데 없이 생겼기 때문이다. 만일 이탈리아 반도의 칼라브리아와 풀리아를 끊어버리고 거기에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떼어다 붙인다면, 이는 호랑이가 날개를 단 모양이다. 지구상에서는 이보다 더한 이상적인 국토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있다.
조선 반도다.
궁금한 사람은 세계 지도에서 그리스의 에게해를 떼어 이탈리아 남쪽에 붙여 놓고, 우리 반도와 함께 살펴보면 된다.
(3) 유틀란트 반도
유틀란트 반도의 면적은 조선반도의 20%도 되질 않는다. 그 안에 산악이라야 해발 200m를 넘는 것이 희귀하니 서울의 남산(265m)을 들어다 놓으면 덴마크의 백두산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는 농업과 축산업의 모범국가로 알려져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12~13세기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노르웨이는 물론, 독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제국까지도 덴마크의 세력권 안에 있었다. 이는 북서 유럽의 중심에 튀어나온 형태로 위치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마치 이탈리아 반도가 지중해에, 조선반도가 동해에 그런 것과 비슷하다. 지금은 정치적 위상이 예전같지 않지만, 위대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의 조국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다.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산업적 발전의 반대편에는 키에르케고르의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앙이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지리적 단원으로 보나, 그 면적과 인구로 보나, 산과 해안선의 생김새로 보나, 기후로 보나, 동아시아의 중심적인 위치로 보나 조선의 지리적 요소에 우리가 불평하기보다는 만족과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넉넉히 살림살이를 꾸려갈 만한 강산이며, 넉넉히 인류 사상에 큰 공헌을 제공할 만한 살아있는 무대이다.
그러나 조선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위치의 불리함을 한탄하고 있다. 황해가 대서양만큼 넓거나 압록강 저편에 알프스 산맥 같은 험준한 봉우리들이 둘러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조선 해협이 태평양만큼이나 넓었더라면 좀 더 평화로웠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못해서 중국, 일본, 러시아 3대 세력 가운데 끼어, 이리저리 치고 받는 형세로 반만년 역사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고 하니 듣는 입장에서 과연 동정의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약자의 비명일 뿐이다.
약자가 평화를 찾아 피신하려면 천하에 안전한 곳이라고는 없다. 남미 페루에 살았던 인디오의 쿠스코(Cuzco)는 우리 백두산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어도 에스파냐 침략자들의 참혹함을 피할 수 없었다. 티벳은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에 숨겨진 나라였으나, 세계 최고의 히말라야 산맥도 영국인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장벽은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닫는다. 비겁한 자에게 안전한 곳이 없고, 용감한 자에게 불안한 땅은 없다고. 무릇 생선을 낚으려면 물에 갈 것이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한다. 조선 역사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 함은 무엇보다도 이 반도가 동아시아 정세의 중심이라는 증거가 된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지만,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 조선반도가 위험하다면 차라리 캄챠카 반도나 그린란드의 빙하 속으로 가야 한다. 현재 상황으로,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고찰해보아도 조선 반도에 지리적 결함은 없다고 확신한다. 다만 문제는 거기 사는 사람들의 소질과 담력이 중요할 뿐이다.
만약 시선을 바꾸어 정신적인 것을 본다면 반도에는 특이한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은 바빌론, 페르시아, 이집트, 아시리아 등 강대한 세력이 복잡하게 뒤섞인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와 척박하고 불리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유일신을 믿는 신앙을 지켜왔다. 이와 같이 조선반도의 사람들 과거 반만년의 역사를 곰곰 생각해보면, 안전한 곳의 사람들과 강대국의 사람들은 도저히 모로는 부분을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상이나 발명은 모르겠지만, 지극히 높은 사상만큼은 가난하고 약하고 멸시당하고 유린당하여 타고난 건방짐의 뿌리가 뽑힌 자에게만 특별히 주어지는 것 같다.
유대인들이 신의 말씀을 듣기까지 온갖 것들을 빼앗기고 부끄러움과 모욕을 겪어야 했다. 요즘 우리는 이웃 나라의 정직함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때에 조선 반도에 시련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그윽히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문화 현상으로 보면 고대 문명이 서쪽의 유럽으로 옮겨가기 시작할 때 그리스 문명의 꽃이 찬란하게 피었던 것처럼, 인도의 문명이 동쪽으로 옮겨 올때에 조선반도에는 다채로운 문화가 출현하였다. 지금은 태평양을 건너온 문화의 물결이 태백산과 소백산의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 백두산 기슭까지 적셨으니, 고귀한 빛이 출현하고 조선반도가 깨어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모든 고난이 이 땅에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산출해야하는 고귀한 사상, 반만년의 모든 것을 용광로에 끓여 만들어낼 핵심은 반드시 이 반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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