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is Geoedu 2019. 3. 10. 19:06

안녕하세요. 1단원 첫번째로 지역 살짝 맛만 보고 수행평가 보면서 바로 슈욱 건너 뛰어서 2단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세계화랑 지리조사는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지리조사는 여러분들 체험학습 시즌 맞춰서 하려구요. 그래서 자연관을 시작으로 해서 자연지리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이 많은 지리학에서 철학의 느낌이 조금 나는 부분이긴 하지만, 크게는 환경결정론과 가능론 두 가지만 잘 잡아놓으면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결정론부터 가봅시다.

환경결정론은 자연환경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진화론 아나요? 갈라파고스에 간 다윈은 핀치 새의 부리 모양을 보고 '아, 이놈들이 먹이가 달라지니까 적응을 다르게 한거고만~'하고 정리했습니다(결코 이렇게 간단한건 아닙니다). 어쨋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체가 살아남아 번식을 하고 후손을 남기니까,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지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열대우림기후지역에서는 이동식 화전농업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무는 엄청 많은데 햇볕도 내리쬐니까 이 나무들이 엄청 잘 자라서 빽빽한 밀림을 이룹니다. 그래서 작물이 있어도 햇볕을 받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날씨가 워낙 덥다보니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서 낙엽같은게 떨어져도 다 분해해버리고, 하루에 한번씩 비가 오니까 빗물이 싸그리 쓸고 내려가버립니다. 토양에 좋은 유기물이 있더라도 나무들이 다 먹고 자라버리니 사실 열대우림지역은 땅이 매우 척박해서 '녹색 사막'이라고까지 부릅니다. 그럼 이런 기후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남았나 봅시다. 나무에 불을 지릅니다. 그럼 재가 땅에 떨어져요. 어때요? 참 쉽죠? 어차피 열대우림기후는 오후만 되면 비가 내리니까 불이 크게 번지지도 않습니다. 그럼 양분이 남아 있을 때 얼른 농사를 짓습니다. 비가 워낙 세게 오니까 작물들 피해를 막아줄 다른 애들도 같이 심구요. 그렇게 몇 년 정도 농사 짓다보면 쿨하게 두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럼 다시 거기서 나무가 자라 밀림을 이룹니다. 이동식화전농업은 그럼 왜 생긴건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지역의 기후 특성이 나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환경결정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사막기후지역에서 뜨거운 햇살과 모래바람을 막을 옷을 입는다든지 하는 것도 모두 환경결정론적인 사고입니다. 우리나라도 사실 옛날에는 풍수지리가 이런 의미로 쓰일 때가 많았습니다. 뭐 어떤 지역은 행주형 형국이라서 재산이 다 떠내려갈 운명이라는 겁니다. 와쓰지 데쓰로라는 지리학자는 조엽수림과 경엽수림으로 구분합니다. 온대에서도 대륙 서쪽의 유럽과 대륙 동쪽의 동아시아가 다른 것을 기후와 식생의 요인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그 사람이 거주하는 환경으로 설명하려는 '풍토와 인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후훗. 눈치챘나요? 진로학술탐색 추천도서입니다.). 그러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있는 관점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환경결정론을 확장해서 라첼은 국가도 유기체같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젊고 역동하는 국가가 있고, 노쇠한 국가가 있다고 칩시다. 그럼 젊은 국가는 앞으로 성장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헌팅턴은 기후대별로 나눠서 살펴봅니다. 더우면 먹을게 많아서 게을러지고, 추우면 활동하는게 엄청 힘이 듭니다. 그럼 적당히 춥고 적당히 더운데는 적당히 자극되니까 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입니다. 결국 이런 논리들이 합쳐져서 나치의 우생학적인 관점이나 제국주의 열강들의 합리화를 만들어냅니다. 열대니까 지배당하는 것으로 결정난 것처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발이 나옵니다. 동일한 환경에서도 다르게 살아가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연제약도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합니다. 열대기후지역의 빈곤은 더워서가 아니라 식민지배와 착취의 결과물이라는 반발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가능론이 나옵니다. 프랑스의 비달 드 라 블라슈는 프랑스에서 자연환경과 인간과의 관계를 연구하며 가능론이라는 관점을 제기했습니다. 환경이 인간 생활에 영향을 끼치기는 끼치지만, 사실 가능성만을 제공하는 것이고 결국 선택은 인간이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뭐 경우에 따라 선택지가 좁을 수도 있고, 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기술을 개발하고 능력을 신장시켜 해낸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후에 등장한 매우 인간 중심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입니다. 북극에 사람이 사나요? 살아요. 북극 가까운 스발바르제도라는 곳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석탄캐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고산지역에 사람이 사나요? 백두산 꼭대기보다도 높은 볼리비아의 라파스에는 사람이 삽니다. 경사가 너무 심한 곳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다녀요. 사막에는 사람이 사나요?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에 있는데 후버댐이라는 큰 댐을 지어 물을 공급받아 사람이 삽니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두바이에는 실내 스키장도 있어요. 에어컨 빵빵하게 틀면 불가능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풍수지리에 대한 보완책이 나옵니다. 비보풍수라는겁니다. 떠내려가는 모양새라면 큰 기둥을 세워 붙잡아둡니다. 빠져나가는 모양이라면 숲을 만들어 막아버립니다. 인간은 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별게 다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스키타려면 어디로 가죠? 강원도처럼 산이 많은 곳으로 갑니다. 귀찮으면요? 그냥 기술과 돈이 있으면 불가능한 것도 없습니다. 부천에도 실내스키장 있어요. 여름에 40도까지 올라가도 스키탑니다. 그래서요? 자연은 훼손되어도 얼마든지 인간의 기술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실내에서 스키타려고 에어컨을 틀면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고,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 화력발전소를 가동합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면서 미세먼지가 나옵니다. 에어컨이랑 미세먼지랑 연결되어있었네요. 조선시대에 인삼 등의 작물 재배를 위해 강원도 영서지방에 숲을 없애고 밭을 만들었습니다. 숲이 있을 때는 비를 나무가 막아주고, 뿌리가 질척거리는 흙을 막아줬습니다. 근데 이제 비가 올때마다 하천으로 모래가 들어오고, 모래가 들어오니까 하천 바닥에 쌓이면서 수심이 얕아지고, 비가 많이 왔다 하면 넘치기 시작합니다. 밭을 만드는게 하류의 홍수피해로 연결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젠 어떻게 하죠?

그래서 생태학적 관점이 대두됩니다. 생태학은 생명과학에서 생명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옐로스톤에 사슴을 보호하려고 늑대를 사냥하고 나니까 이젠 사슴이 너무 번식해서 너무 뜯어먹다보니 공원 전체가 황폐화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늑대를 도입해서 풀어놓으니 사슴의 개체수가 조절되어 다시 균형을 찾았다는 내용입니다. 뭐 그 사실에 대한 반박 자료도 많지만, 어쨋든 환경을 이해할 때에는 한 가지만 보고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와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우리가 새우를 먹다 보니 동남아시아에는 새우 양식장을 만들기 위해 맹그로브 숲을 파괴했고, 그 것이 다시 바다의 오염을 가져왔습니다. 맹그로브 숲이 해안의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가 한 손에는 풍요를 들고 왔지만 다른 손에는 환경문제를 가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반성하고, 자연환경이 가진 중요성을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돈과 우리의 만족만을 최우선하던 가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환경과 우리 미래 세대까지도 함께 고려하자는 관점입니다.

뭐 교과서는 여기까지 나와 있습니다만, 여러분들은 한발짝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더 적어봅니다. 이러한 생태학적 관점이 가진 장점도 많습니다. 미세먼지를 봅시다. 우리가 요 근래 며칠간 미세먼지에 시달리면서 대책들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미세먼지 포집 장치를 만든다거나, 아이오딘화 은을 상공에 분사하여 인공강우를 내린다는 발상들은 모두 가능론에 입각한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를 넘어 화력발전소나 노후경유차의 운영 자체에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은 생태학적 관점이 가진 가치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생태주의에도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은 있습니다. 먼저 환경주의와 구분되는 부분입니다. 환경주의 입장에서 환경 문제는 모두 과학자의 영역으로 간주합니다. 전문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은 전문가에게 부탁하는 관점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몫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환경주의는 생태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뚜렷합니다. 생태주의는 이러한 것들을 사회문제로 바라봅니다. 생태주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공동체주의와 무정부주의의 경향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대한 자본주의 체계나 국가의 에너지 공급체계 등을 이러한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그 대안으로 협동조합이나 지역공동체 등의 작은 자치조직을 우선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식 자체의 특성이 있습니다. 마치 자연이라는 것은 인간과 별개로 순수한 상태로 있는 것이 있다고 전제를 하고, 인간 사회는 이를 오염시키려는 원인이고 자연은 신성한 것인데 침해되는 것처럼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생태주의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면 모든 인간은 지구에서 사라져야 도움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연을 인간과 나누어 이분법적으로 보는 견해에 대한 반박으로 등장한 것이 '자연의 사회적 구성론'입니다. 구성주의라는 것은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논의와 합의의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자연이라는 것도 인간과 딱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하나의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우리 애국가를 한번 생각해볼까요? 동해물과 백두산, 남산과 소나무, 가을 하늘, 밝은 달, 무궁화 삼천리가 나옵니다. 다 자연환경입니다. 근데 이 단어들을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왠지 숭고하고 아름답고 멋지고 대단하지 않나요? 백두산은 숭고하고 한라산은 천박합니까? 아니에요, 다 화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두산은 숭고한 것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금강산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예쁜 산입니다. 독일의 라우텐자흐가 한국을 샅샅이 뒤져 책을 쓸 때에도 금강산 내용은 꼭 써줬습니다. 그런데 남북분단이 되고 금강산이 군사분계선 인근에 있다보니, 가장 먼저 금강산관광지구를 통해 남북경제협력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냉각기에 접어들 때에도 가장 먼저 금강산부터 폐쇄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금강산은 통일국토를 상징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동시에 남한 입장에서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만한 돈줄이고, 북한 입장에서는 사회주의의 개혁을 시작하는 선전수단이 되어 이데올로기가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산 말고 물을 볼까요. 하천에 흐르는 물은 경제적인 입장에서는 수자원으로 경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재화입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고 이제는 하천이 제 모습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지면서 생태적인 가치가 부각되어 하천이 생명의 젖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하천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자연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본주의가 심화되어 자연에도 자본주의가 묻었습니다. 자연의 신자유주의화라고 합니다. 자본이 자연을 상품화시켜서 지속적으로 축적을 도모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냥 자연도 돈벌이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석탄과 신재생에너지를 비교해봅시다. 석탄을 캐서 열에너지를 통해 우리가 필요한 에너지의 형태로 전환하는 일은 지난 수백년간 우리가 해왔던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녹색에너지라고 하면서 신재생에너지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땅에서 만들어진 석탄은 자연이 아니고, 실리카에서 추출한 잉곳으로 웨이퍼를 만들어 전자를 이동시키는 태양광 에너지는 자연인가요? 태양광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 패널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나오는데다, 패널 자체의 수명이 있어 무한하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석탄 화력 발전으로 공기가 나빠져 새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환경 파괴적이고, 풍력발전기가 돌면서 새들을 토막내는 것은 친환경적인가요? '녹색', '친환경'이라는 테마조차도 어쩌면 기후에 대해 자본이 포섭하고 있는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깊은 이야기까지 하다보니 토막으로 하겠다는 포부는 어디로 가고 알쓸신지 모드로 바뀌게 되었네요. 아유. 참. 이만 하겠습니다.

안녕~